[새 경제팀, 경제 적폐부터 없애라] 수도권 입지규제 풀겠다더니 8개월째 '감감'…수조원 투자 '발목'
지난해 10월29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30대 그룹 사장단을 만나 투자·고용을 확대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투자를 가로막는 요인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달라고 했다. 본지가 입수한 당시 회의 녹취록에 따르면 기업들은 수도권 공장 신·증설 제한 규제와 노동유연성을 가로막는 제도, 과도한 조세부담을 해결해줄 것을 요청했다. 기업활동의 핵심 요소인 입지·노동·세금 걸림돌을 없애달라는 것. 윤 장관과 각 부처 실무담당자들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최대한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규제 완화를 약속하고 있지만 정말 풀어야 할 규제들은 손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풀리지 않는 경제적폐

< 텅빈 청라지구 첨단산업단지 >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지구 내 텅 빈 첨단산업단지. 국내 기업에도 세제 혜택을 주려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정책이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개발이 지연되고 있다. 청라=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 텅빈 청라지구 첨단산업단지 >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지구 내 텅 빈 첨단산업단지. 국내 기업에도 세제 혜택을 주려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정책이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개발이 지연되고 있다. 청라=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반 ‘경제민주화’에 초점을 맞췄던 경제정책 기조를 올 들어 ‘규제개혁’으로 바꿨다. 이에 맞춰 부처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경쟁적으로 규제개혁 과제와 해결 방안을 내놓고 있다. 푸드트럭을 허용하고 소상공인도 청년인턴을 채용할 수 있게 하며 유사 인증 제도를 정비하는 등 이른바 ‘손톱 밑 가시’를 뽑겠다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정작 꼭 풀어야 할 핵심 규제는 그대로다. 대표적인 게 수도권 입지규제다. 일부 개별 기업 공장 설립이 허용되긴 했지만 수도권에선 여전히 까다로운 법망을 통과해야 공장을 지을 수 있다. 사실상 증축은 불허된다. 이미 수도권에 공장을 두고 있는 SK하이닉스 등도 증축을 허가받기까지 10년 넘게 걸렸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프랑스와 영국, 독일, 일본 등은 2000년대 들어 수도권 규제를 풀어 기업 투자를 유치하는데 우리만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노동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적폐다. 10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파견법 개정 논의가 그런 사례다. 현행 법률은 컴퓨터 관련 전문가 등 32개 업종에서만 파견근로자를 쓸 수 있게 허용한다. 고용기간도 최장 2년으로 제한된다. 그러다보니 주요 제조업체들은 파견 형태가 아닌 도급 형태로 외부에서 근로자를 받아 쓴다. 그런데 파견과 도급의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기업들마다 소송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2005년부터 불법파견 문제로 시달리고 있으며, 삼성전자도 작년 말부터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의 사내하도급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수년째 파견법을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정부와 국회는 지금까지 손도 대지 않고 있다”며 “설비 투자에 쓸 돈이 소송으로 나가게 생겼는데 어떤 기업이 투자를 늘리려 하겠느냐”며 답답해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나 정년 연장 등 갈수록 노동비용을 높일 규제만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숨통 조이는 고름 짜내야”

세제 관련 규제도 문제다. 한국의 법인세율은 22%로 선진국과 비교해 과도하지 않다. 하지만 다른 부담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게 경제계의 지적이다. 정부가 올해 연구개발, 환경·안전 투자세액공제 혜택을 줄인 게 대표적이다.

전자업종 A그룹 관계자는 “해외 정부는 우리에게 세금을 확 낮춰줄 테니 연구소를 지어달라고 부탁한다”며 “그런데 국내에선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세액공제 혜택을 많이 받는다고 연구개발 세제혜택을 종전 10%에서 3%로 줄이겠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세금이나 마찬가지인 각종 부담금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산업용 전기요금의 경우 작년 6.4%나 올랐고 기업 대상의 여름철 할증요금 부과 기간도 종전 7~8월에서 6~8월로 확대됐다.

철강업체 D사 관계자는 “땅값과 인건비도 비싼 상황에서 그나마 경쟁력 있던 전기요금까지 올리는 것은 기업에 밖으로 나가라는 말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기업들은 새 경제팀의 가장 큰 과제는 20~30년째 바뀌지 않는 이 같은 ‘적폐’를 없애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근본적인 규제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기업들의 투자 확대와 경제성장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다. 이런 규제를 풀지 않으면 해외로 나가는 국내 기업을 잡을 수 없고, 이는 곧 국내 일자리·투자 감소로 이어진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국내 기업이 작년 한 해 해외에 투자한 돈만 30조원이 넘는다”며 “손톱 밑 가시를 100개 뽑는 것보다 수도권 규제, 노동 규제 등 기업의 숨통을 막는 규제를 제대로 푸는 게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태명/강현우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