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4만명의 소도시인 충남 계룡시 외곽에 있는 계룡종합문화체육단지. 이곳에 지하 2층, 지상 3층 연면적 9462㎡ 규모로 지어진 계룡문화예술의전당이 2011년 6월 문을 열었다. 600억여원을 들여 대공연장(826석)을 비롯해 소공연장(180석), 전시실 등을 갖춘 이 시설에선 지역 주민을 위한 콘서트와 뮤지컬 등의 행사가 열린다. 하지만 올 들어 지난달까지 계룡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공연은 17회에 불과했다. 월평균 3.4회 열린 셈이다. 8월 이후 예정된 공연은 한 건도 없다. 이런 상황인데도 인근 단지에 연말까지 시민체육관과 종합운동장이 들어선다. 단지 조성에 사업비 1018억원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해 예산이 1326억원인 계룡시 한 해 예산의 80%에 육박하는 비용이 여기에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지방부채 100조원 시대

민선 지방자치 실시 이후 선거를 통해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면서 지방재정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전국 244개 광역·기초자치단체의 전체 채무는 27조1252억원에 이른다. 지자체가 사실상 부담해야 하는 산하 지방공기업 부채도 같은 기간 72조5000억원에 달한다. 지자체가 감당해야 하는 총부채가 100조원에 육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막대한 지자체 부채는 지역 주민의 세금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자체 재정난의 가장 큰 원인은 재정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벌이는 무분별한 대규모 사업이다. 지자체를 파산 위기까지 몰고 갔던 용인 경전철과 태백 오투리조트 사업이 대표적이다. 계룡시는 계룡문화예술의전당 조성을 위해 민간이 시설을 짓고 지자체가 20년간 임차해 쓰는 민간투자사업(BTL) 방식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계룡시가 향후 20년 동안 민간사업자에 내야 하는 비용만 연간 50억원이 넘는다. 하지만 수요 부족 탓에 연간 운영수입은 20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매년 30억원가량 적자를 보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선출직인 자치단체장이 선거를 의식해 임기 내 ‘눈에 보이는’ 선심성 사업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거의 속성상 정치인들은 당선되기 위해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기 마련”이라며 “지방으로 갈수록 선거 때마다 현실성 없는 개발사업이 난무한다”고 지적했다.

선거 공약 달성에 220조원 필요

여야 광역단체장 후보가 6·4 지방선거 직전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 제출한 ‘공약 가계부’ 자료에 따르면 정당별로 공약 실천에 필요한 비용은 새누리당이 191조2001억원,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이 118조1546억원에 달했다.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경기, 울산, 세종을 제외한 14개 광역자치단체 당선자 기준으로는 220조원6692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절반가량인 101조원은 중앙정부로부터 국비 보조를 받겠다는 게 당선자들의 주장이다.

전국 광역·기초자치단체의 연간 총 예산은 150조원 수준이다. 하지만 안전, 복지 등 매년 필수적으로 소요되는 예산 및 중앙정부 매칭 사업을 제외하면 지자체가 별도 사업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연간 예산이 24조원인 서울시의 경우 연간 가용예산은 7000억~8000억원 수준이다. 17개 광역자치단체의 연간 총 가용예산은 5조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비 보조를 전액 받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애초부터 공약 달성을 위해 100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에 따라 안행부는 뒤늦게 지방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지자체 파산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올해 초 밝혔다. 그러나 지방자치의 취지를 훼손하고 중앙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자체의 우려도 적지 않아 제도 도입까지는 어려움이 예상된다.

강경민/대전=임호범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