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아름다운 게임, 추한 비즈니스
오늘날 독일 경제의 초석을 다진 슈뢰더 전 총리의 별명은 ‘쟁기’였다. 젊은 시절 프로축구 미드필더로서 잔디를 파고 다녔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페스트’ 같은 걸작은 하마터면 못 볼 뻔했다. 그가 17세에 결핵을 앓아 축구를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극작가 피터 한트케는 무대 위 연극이 지루하다 싶으면 축구장으로 달려갔다.(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 ‘축구란 무엇인가’)

축구만큼 단순한 운동도 없다. 공을 골문에 우겨넣으면 그만이다. 오프사이드 외엔 복잡한 규칙도 없다. 그럼에도 세계 최대 스포츠가 된 것은 그런 단순함이 한몫했다. FIFA는 유엔(193개국), IOC(204개)보다 많은 209개 회원국을 거느렸다. 축구가 영어보다 더 큰 만국 공통어인 셈이다. 비록 3대 인구 대국(미국, 중국, 인도)을 정복하진 못했지만….

밤잠 설치는 월드컵 시즌이다. 군대 가서 축구한 얘기를 가장 싫어하는 여성들도 이때만은 예외다. 브라질에선 매일 새벽 각본 없는 걸작 드라마가 펼쳐진다. 판 페르시의 16m 다이빙 헤딩 골, 수비수 3~4명을 휘젓는 메시의 골, 드록바의 신과 같은 존재감…. 모든 게 다 놀랍다. 코스타리카의 셋째 골은 물리학마저 연상시킨다. 빠른 속도에 자극이 가해질 때 공이 어떤 궤적을 그리는지.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35세 노장 피를로가 연출했다. 그는 골도 어시스트도 없다. 단지 공을 흘려준 것으로 마법사 반열에 올랐다. ‘급소를 아는 늙은 사자’라는 소설가 함정임의 비유가 와닿는다. 이런 게 축구다.

하지만 축구가 처음부터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은 것은 아니다. 얼마 전만 해도 훌리건 난동이 벌어졌고, 폭죽 화염 연기가 난무하는 경기장은 전쟁터나 다름 없다. 네덜란드 심리학자 뵈이텐디예크는 축구의 핵심을 ‘비열한 개싸움’으로 표현했을 정도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야구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럼에도 모두가 열광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는 지난주 ‘아름다운 게임, 추한 비즈니스’라는 커버스토리를 실었다. 202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을 둘러싼 추문을 계기로 FIFA를 까칠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축구가 비즈니스가 되면서 축구만으로 재벌이 되는 스타들이 탄생했다. 신계(神界)의 메시, 호날두나 인간계의 네이마르, 아자르, 수아레스, 벤제마 등을 안방에서 만난다.

내일 아침이면 한국과 러시아의 일전이 벌어진다. 아름다운 축구는 최선을 다한 경기다. 지나친 환호도, 실망도 금물이다. 축구는 축구일 뿐이니까.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