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보험사 CEO 단명 '유감'
“임기를 채운다는 보장도 없는 판에 길게는 십수년씩 투자가 필요한 해외 사업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겠습니까.” 금산분리와 전업주의 등의 규제를 풀어 보험사의 해외 진출을 독려하겠다는 정부 발표를 접한 한 중소형 보험사 사장의 말이다. 국내 보험사의 해외 진출이 더딘 이유는 ‘최고경영자(CEO)의 짧은 임기’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요즘 보험업계가 돌아가는 걸 보면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작년 6월 취임한 윤순구 흥국화재 대표는 1년도 안된 지난달 말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 불과 보름 전 변종윤 흥국생명 대표가 갑작스레 중도사퇴해 뒷말이 무성하던 시기였다. 이들의 퇴진 사유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모기업인 태광그룹의 수뇌부가 바뀐 때문 아니겠느냐는 추측만 돌 뿐이다.

보험업은 가장 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한 사업 중 하나로 꼽힌다. 보험상품의 만기가 20~30년에 달할 만큼 호흡이 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갑작스레 CEO가 물러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금융지주체제나 대기업 그룹 소속 보험사에서 특히 자주 목격된다. 메리츠화재 사장이 지난해 말 임기를 반년 남긴 상태에서 퇴진했고, 신한생명 KB생명 CEO도 경영성과와 무관하게 지주의 사정에 따라 교체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장기적인 자산운용 전략이나 해외 진출 계획 수립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3년 임기조차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수년 뒤에 성과가 나올 투자를 결정하고, 신사업을 추진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 것이다.

나름 잘나가는 보험사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CEO 재임 기간이 길다. 외국 보험사 중 국내에서 성공한 사례로 거론되는 푸르덴셜생명과 메트라이프생명의 평균 CEO 재임 기간은 5년이 넘는다. 한국의 재보험 시장을 개척한 코리안리재보험의 경우도 한 사장이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재직하며 일관된 전략을 편 점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많다.

가계의 보험 가입률이 80%를 웃돌며 한국 보험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해외 개척으로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지금처럼 취약한 리더십으로는 글로벌화가 요원하다.

김은정 금융부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