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가 코스닥 컴퓨터 주변장치 제조업체 D사의 주식을 매입한 때는 2012년 9월이었다. 삼성전자 해외법인에 납품을 앞두고 있어 주가가 계속 오를 것이란 얘기를 전해듣고, 정기예금을 깨 1000만원을 이 주식에 투자했다. 하지만 D사의 주가는 기대와 달리 계속 떨어졌다. 이듬해 최대주주가 바뀐 지 1년6개월 만에 또다시 최대주주 변경 공시가 났다. 공모시장에서는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고 사모로만 2년 새 1000억원대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했다. A씨는 이상하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본전 생각에 주식을 계속 보유했다. 결국 이 회사는 지난 3월 말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했다. A씨의 투자금 1000만원은 157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하는 기업들을 살펴보면 1~2년 전부터 비슷한 수순을 밟는다”며 “투자자들이 상장폐지 징후를 잘 포착하면 큰 손실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대주주 자주 바뀌면 상장폐지 주의"
○최대주주 변경 비율 3배 높아

16일 금감원이 상폐 사유가 발생한 39개 상장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상장사는 정상적인 기업에 비해 최대주주 변경이 3배 가까이 많았다. 39개사 중 최근 3년간(2011년 초~2014년 3월 말) 최대주주가 바뀐 비율은 59%(23개사)로 전체 상장사 평균인 22%보다 월등히 높았다.

상폐 징후 기업은 대표이사도 많이 바뀌었다. 39개사 중 최근 3년간 대표이사가 바뀐 회사는 21개사(53%)이며, 이 가운데 11개사는 2회 이상 변동됐다. 전체 상장사의 대표이사 변동 비율은 27%였다.

최대주주나 대표이사 변동이 빈번한 회사는 내부통제도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39개사 가운데 지난 3월 말 현재 최대주주 등의 횡령·배임 혐의가 드러난 회사는 디지텍시스템스, AJS, 동양, 동양네트웍스, 유니켐, 아라온테크, 티이씨코 등 7개사다. 이 중 3개사는 최대주주가, 3개사는 대표이사가 바뀌었다.

○ 자금조달 여건 악화…사모 선호

상폐 사유가 발생한 기업의 또 다른 특징은 공모보다 사모를 통한 자금조달이 많다는 점이다. 상폐 징후 기업 39개사의 최근 3년간 직접금융 조달 실적은 4조6316억원이었다.

이들은 상폐 사유가 발생하기 전인 2013년 공모를 통한 조달금액이 전년 대비 31% 수준으로 급감한 반면 소액공모는 185%, 사모 조달금액은 269% 급증했다.

소액공모나 사모를 통한 조달은 공모와 달리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증권신고서에는 자금 사용처는 물론 재무상태 등 기업의 속사정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 공모실적은 급감하고 사모실적이 급증하는 것은 상폐 사유 발생 전년도에 이미 자금조달 여건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타법인 출자나 목적사업 변동도 잦았다. 상폐 사유 발생 기업 39개사 중 22개사가 타법인 출자 등을 통해 목적사업을 추가 또는 변경했다. 이 중 11개사는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적은 이종업종을 새로운 사업으로 추가했다.

회계법인의 감사의견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39개사의 2013년 재무제표에 대한 외부감사의견 중 34개사(87%)의 감사의견에 ‘계속기업 불확실성’이 언급됐다. 나머지 5개사는 적정의견을 받았지만 특기사항으로 특수관계자와의 거래, 우발채무 등이 기재됐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