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동해 페트로프 섬
문화는 물길따라 이동하고 흐르면서 남과 북, 동과 서를 연결하고 융합해 새롭게 변해간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라 한반도를 감싸는 바닷길이 중요한 문화의 이동로로 널리 쓰였다. 동해안에는 선사시대부터 바닷길을 따라 남북이 서로 소통했던 역사유적이 해안을 따라 함경북도 해안까지 분포돼 있다. 더 북쪽으로 나아가 러시아 땅에도 흔적이 남아 있다. 시대마다 동해길은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문화 교류의 길이었다.

한반도의 북쪽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에서 북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올라가면 해안과 인접한 곳에 페트로프 섬이 있다. 이 섬은 러시아 학자들이 1960년대 중반 발굴한 곳이다. 조사 결과 4~5세기 유적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지나 자세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바닷속에 돌로 쌓은 유적이 있다는 막연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로도 전해진다.

유적지를 탐사할 땐 막연한 이야기가 또 하나의 역사를 열어준다. 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편으로 8시간 이상 소요된다는 그 섬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배편이 여의치 않아서 몇 번의 조사계획을 수정한 후 드디어 많은 비용을 들여 헬리콥터로 페트로프 섬을 찾았다. 그러나 섬은 안개에 덮여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회항을 하려다가 갑자기 안개가 걷혀서 순간적으로 전모를 볼 수 있었다.

페트로프 섬은 타원형으로 푸른 동해에 떠 있었다. 마치 월트디즈니 영화 ‘피터팬’에서 보여준 이상세계의 섬과도 같았고, 전남 완도의 장군섬과도 그 규모와 모습이 닮았다. 완도 장군섬은 육지와 섬의 연결로가 썰물 때 나타나지만 페트로프 섬은 돌이 깔린 길이 섬과 육지의 연결도로로 돼 있었다. 그 길은 물속에 가라앉아 있어 더욱 신비로웠다. 물밑의 도로는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 철기시대일까? 바닷길 경영을 활발하게 했던 발해시대일까? 그 역사가 궁금했다. 그러나 이 섬은 우리 역사에서 동해 해상영역의 한 거점이었음은 분명하다.

나는 아직도 동해길을 따라가서 그 섬의 역사성을 밝혀보는 본격적인 유적조사를 꿈꾸고 있다. 동해 바닷길을 남북으로 연결해 한국의 동해 경영의 역사를 정립하고 싶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1000년 넘은 유적 밑 그 바닷속에 깔려 있는 성게를 건져내 맛본 풍미가 더욱 그립다.

나선화 < 문화재청장 shrha@ocp.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