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영상촬영장치를 개발한 세계적인 뇌과학자 조장희 교수(왼쪽)가 인천 중앙공원에서 정구학 부국장과 걷고 있다. 조 교수는 반소매 와
이셔츠를 입고 젊은이처럼 성큼성큼 걸었다. 신경훈 기자 nicepeter@hankyung.com
뇌영상촬영장치를 개발한 세계적인 뇌과학자 조장희 교수(왼쪽)가 인천 중앙공원에서 정구학 부국장과 걷고 있다. 조 교수는 반소매 와 이셔츠를 입고 젊은이처럼 성큼성큼 걸었다. 신경훈 기자 nicepeter@hankyung.com
뇌. 동물을 움직이는 명령체다. 고등동물인 사람의 뇌는 하등동물보다 진화했다. 동물적 본능과 감정 외에 이성적 판단을 하는 대뇌가 인간의 중추다. 중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시체의 뇌를 해부한 것처럼 뇌를 캐보려는 탐구는 계속됐다. 다른 신체 조직과 달리 살아있는 사람의 머리를 열어 보는 것은 힘들었다. 1970년대 컴퓨터단층촬영장치(CT·Computer Tomography)와 양전자단층촬영장치(PET·Positron Emission Tomography), 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MRI·Magnetic Resonance Tomography)라는 뇌영상 촬영 기계가 발명되면서 달라졌다. 산 사람의 뇌를 찍어서 어느 신경회로가 고장났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조장희 교수(78)는 이들 세 종류 중 PET를 처음 발명하고 나머지 기계도 고해상도 장치로 발전시킨 세계적인 과학자다. 뇌를 활성화하려면 머리와 몸을 함께 써야 한다고 강조하는 조 교수와 산책 인터뷰를 했다. 지난 10일 오후 3시30분부터 3시간 동안 그가 근무하는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길병원 근처 중앙공원과 뇌과학연구소 연구실에서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암벽 등반과 스키를 즐겼다. 걸음 속도가 젊은이 못지 않았다.

▷산책로가 평범한 공원이네요.

[정구학의 '사색의 길 따라'] 조장희 "걸을수록 뇌는 진화하죠"
“(공원 건너편을 가리키며) 제가 사는 아파트가 저기예요. 평범한 공원이지만 가깝죠. 오전 6시20분에 나와서 40분씩 혼자 걸어요. 집사람은 집에 있고요.(웃음) 걷는 건 참 좋아요. 오늘 할 일을 생각하면서 정리하고, ‘내일 여행 가는데 뭘 준비해야 하나’ 이런 생각도 하고요. 외국 출장 가서도 꼭 걷죠.”

▷대중교통을 이용합니까.

“저기 지하철역(인천지하철 1호선 인천터미널역)이 있는데, 가끔 여기서 지하철을 탄 뒤 신도림역에서 갈아타고 서울 강남도 가고, 강북에도 가 점심 저녁 먹고 돌아와요.”

▷친구들 만나면 술은 안 마시나요.

“맥주는 반 잔씩 마셔요. 예전에 한국물을 먹으면 설사해 맥주를 조금씩 마셨죠. 담배는 서른다섯 살까지 피웠지만, 무슨 맛인지 몰랐어요.”

▷건강한 뇌를 만들려면 왜 걷거나 뛰어야 합니까.

“심장에서 나오는 피의 20%가 머리로 가요. 뇌의 무게는 몸무게의 2%밖에 안 되죠. 그러니까 운동하면 뇌가 다른 신체조직보다 10배 특혜를 받는 셈이죠. 운동하면 팔다리가 튼튼해지고, 알통이 나오니까 좋아하는데 그건 부수적으로 얻는 겁니다. 무엇보다 뇌가 좋아져요.”

▷마라톤 선수 같은 육상선수의 뇌는 어떤가요.

“뇌 신경망을 보면 운동선수와 건강한 일반인은 비슷하죠.”

▷술을 많이 마셔 손상된 뇌는.

“회복할 수 있죠. 뇌는 고무나 플라스틱처럼 줄었다 늘었다 합니다. 열심히 운동하면 팔다리가 살찌는 것과 똑같이 뇌 기능이 조금씩 늘어나요. 젊을수록 회복이 빠르고, 나이를 먹어도 회복해요. 뇌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달리기를 하면 기억 기능을 담당하는 해마가 커지죠.”

▷몸 안 움직이고 뇌만 쓰면.

[정구학의 '사색의 길 따라'] 조장희 "걸을수록 뇌는 진화하죠"
“손을 관장하는 뇌 부위와 생각하는 뇌 부위는 달라요. 요즘 학생들을 보면(근처에서 나오는 학생들을 보며) 공부를 많이 하는 건 괜찮은데, 제발 운동 좀 했으면 좋겠어요. 운동을 안 하고 공부만 하면 나중에 쓸모가 없어요. 우리가 자랄 때는 언덕에서 뛰어놀고 넘어지는 게 일상이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학교, 학원만 다니는데 크면 뭐가 되겠어요.”

▷친구한테 걸으라고 하면 뭐라고 해요.

“농담만 하면서 실제로는 안 해요. 뇌졸중 환자가 걸으면 신체기관이 뇌에 자극을 줘서 살아납니다. 해당 뇌 부위가 터졌어도 자꾸 움직이면 옆의 뇌 부위가 역할을 대신 해줘요.”

▷지금의 뇌과학 수준은 어떻습니까.

“뇌는 아직 몰라요. 수술도 하고 약도 먹고 하는데 왜 하는지 모르는 거죠.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뇌지식에서는 15, 16세기에 있는 셈이죠. 중세기를 막 지나 지동설을 알아낸 갈릴레이 때라고 하면 맞을 거예요.”

▷뇌 지식이 그렇게 초기인가요.

“죽은 사람의 뇌를 봐야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 1970년대에 과학자들이 처음 살아있는 뇌를 보고는 6년 만에 노벨상을 받았죠. 제가 처음 만든 PET와 MRI로 본 거죠. 40년이 지난 지금은 해상도가 100배 높아졌죠. 아직도 컴컴한 터널을 지나가는 겁니다. 옛날엔 더했지만 지금은 조금씩 보기 시작한 거죠.”

▷뇌과학을 발전시켜야겠네요.

“뇌를 정복하면 사회가 점점 좋아지죠. 왜 사기를 치고, 왜 우울증이 생기는지 원인을 찾을 수 있어요.”

▷원인을 뇌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까.

“예전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젊은 사람이 딸을 죽인 사건이 발생했죠. 살인자는 좋은 사람이었는데 2년 전부터 갑자기 포악해져서 딸까지 죽였어요. 그래서 변호사가 ‘뇌를 한 번 찍어보자’고 했죠. 뇌를 촬영해 보니 편도체에 암이 생겼어요. 편도체는 감정을 조절하는 걸로 알려졌는데, 그래서 조금만 자극이 오면 화를 냈던 거죠. 결국 변호를 잘해서 살았습니다. 모든 게 그래요. 순간적으로 화를 내 1, 2분 안에 사고를 치죠. 뇌과학을 알면 고칠 수 있는 것인데 말이죠. 그 사람은 악성 종양이 아니어서 수술로 고쳤어요.”

▷술을 많이 마시면 뇌는 어떤가요.

“비교 판단 예측을 하는 전두엽이 꺼지죠. 술 마신 뒤의 행동과 습관을 보면 감정과 동물적 본능의 뇌만 작동해 분풀이를 하죠. 억눌렸던 걸 폭발시킵니다. 술을 많이 마시면 뇌가 줄어들어요. 제가 공부하던 스웨덴에선 술을 마시고 건들거리면 장·차관이고, 국무총리고 모두 하룻밤 감옥에 보내 격리시킵니다. 사고 칠 수 있는 잠재능력을 차단하는 거예요.”

▷컴퓨터 게임은 뇌에 어떤가요.

“게임은 조금 하면 좋죠. 많이 해서 문제입니다. 학생들이 게임을 심하게 하면 컴퓨터를 빼앗아야겠죠. 처음엔 반항하겠지만 그래도 빼앗아야 합니다. 다른 재미있는 걸 찾으면 마음이 바뀝니다.”

▷뇌는 한마디로 뭡니까.

“뇌는 굉장히 복잡한 컴퓨터입니다. 즉 제일 발달했으면서도 감정을 집어 넣은 컴퓨터죠.”

▷감정을 넣었다고요.

[정구학의 '사색의 길 따라'] 조장희 "걸을수록 뇌는 진화하죠"
“(슬라이드를 보여주며·왼쪽 그림) 뇌를 색깔로 표시했어요. 바깥쪽에 있는 빨간 부위는 생각하는 뇌예요. 그 안쪽의 노란색은 감정이고요. 뒤쪽의 하늘색 뇌는 보는 시각이고, 가운데 녹색은 청각이죠. 촉각 후각 미각도 감각 영역에 있어요. 70%가 시각입니다. 그래서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딱 맞아요. 신피질인 생각하는 빨간 뇌가 이렇게 감정 뇌인 노란색으로 물들었습니다. 인간 생각의 90%가 감정이에요. 사람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아 저 사람은 감정 없이 공정하게 생각해’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감정의 지배를 강하게 받습니까.

“전부지요. 한국에서는 사람들끼리 감정을 건드려 싸움을 자꾸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하는 거 보세요. 관료, 수석 인사를 하는데 전부 감정이에요. 옛날에 미국 카터 대통령이 애틀랜타 시장을 할 때 데리고 있던 재무과장을 미국 재무장관에 앉혔어요. 그게 감정이에요. 좋아하니까요.”

▷감정을 잘 다스려야겠네요.

[정구학의 '사색의 길 따라'] 조장희 "걸을수록 뇌는 진화하죠"
“감정을 다스리는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선진 사회일수록 감정을 자제하고 조절하죠. 뇌 색깔에서 노랗게 물들어 있는 걸 줄여야 합니다. 성숙한 사회는 책을 많이 읽어서 대뇌가 발달한 사람이 많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도 감정을 얼마나 줄였는지 몰라요. 어렸을 때부터 남을 도와주고, 칭찬해주고 해서 조절 능력을 키워야 해요. 교육이 참 중요한 겁니다. 우린 그런 사회교육을 못 받았어요. 30, 40년 전만 해도 버스 탈 때 줄을 설 줄 몰랐어요. 유럽은 200년 동안 줄을 섰어요. 살아보니까 그게 효율적입니다.”

▷경제가 중요하지 않나요.

“먹고 사는 게 중요하죠. 그런데 한국은 먹을 것만 많아졌어요. 술만 늘어났어요. 국가가 정신적인 성숙도를 높여줘야 하는데, 사람들이 술 마시고 싸우니까 문제입니다.”

▷어떻게 뇌과학을 하게 됐나요.

“자연스럽게 하게 됐어요. 1972년까지 물리학을 공부했는데, 미국 UCLA에서 핵물리를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걸 시작했어요. 1970년대에 학생들이 핵전쟁을 반대하며 데모해서 난리가 났죠. 저는 한 1년 미국 구경이나 하고 오자 해서 부교수로 갔습니다. 그때 CT가 막 나왔어요. 핵물리의 응용이죠. CT 개념이 나와서 한번 해보자 해서 초기 성능의 PET를 제가 처음 만들었습니다.”

▷가치관은.

“별로 내세울 게 없어요. 정직하게 남들 도우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사람은 한순간 거짓말을 할 때가 있는데 길게 보면 정직해야 신뢰를 얻지요. 차 사고도 날 수 있고, 부도도 날 수 있는데 그럴 때 신뢰를 쌓으면 사람들이 ‘그래, 얼마 필요해?’라며 돈을 꿔주지요. 살아보니까 솔직한 게 손해보는 것이 아니라 신용을 얻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성공이 뭐냐고요? 각 분야에서 ‘그 사람 없으면 안 되는데’ 그러면 성공한 거예요.”

▷앞으로 계획은.

“이달 말에 길병원 뇌과학연구소장직을 그만둡니다. 옮길 곳을 몇 군데와 협의 중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게 중요하지만 나라 전체로는 긍정적인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자동차나 스마트폰처럼 남이 만든 연구 덕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데, 우리도 인류에 기여하는 선진국과 문화민족이 됐으면 좋겠어요. 시도해봐야죠. 두고 봅시다. 해상도를 더 높인 뇌영상촬영기계를 개발하면 아마 젊은 사람들이 30년 뒤에 노벨상을 타겠죠.(웃음)”

뇌는 나이듦이 아니라 쓰지 않을수록 쇠퇴…80세도 머리 많이 쓰면...젊은이랑 똑같아

[정구학의 '사색의 길 따라'] 조장희 "걸을수록 뇌는 진화하죠"
뇌영상촬영장치를 통해 40년간 수많은 사람의 뇌신경 상태를 관찰해온 조장희 교수는 개인과 인종 간의 지능 차이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인종 간 뇌에 차이가 없나요.

“옛날에 두개골이 달라서 흑인들 하고 차이 있는 줄 알았는데 똑같아요.”

▷개인 간 지능의 차이는.

“글쎄요. 지능에 차이가 있는 줄 모르겠습니다. 지구력이 있거나 참을성이 많으면 공부를 잘하겠죠. 학습이나 성공은 얼마나 복잡한 잡념을 없애고 집중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바보 같은 사람이 뭐든 잘합니다. 저는 학생들한테 우직하라고 강조해요.”

▷아인슈타인의 뇌도 우리와 비슷합니까.

“아인슈타인 당시 뭐를 알 수 있었나요. 현재 과학으로는 우리와 특별히 다르다는 증명도 없고요.(웃음)”

▷교수님의 IQ는.

“검사를 정식으로 안 해봤어요. 옛날에 장난으로 해봤는데 아마 120 정도였나?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고 평범하지요. 어떤 사람이 나보고 천재라고 그러던데, 천재는 뭔 얼어죽을 천재야.(웃음)”

▷여자는 쇼핑을 좋아하는데 남자와 뇌가 다른가요.

“여자가 쇼핑할 때 도파민이 나와서 그런 거죠. 남녀 간 뇌 차이가 있어요. 예컨대 호르몬도 다르고, 확실치 않지만 여자는 말을 관장하는 뇌 부위가 크죠. 수다하고도 관계 있지 않나 그런 얘기가 있어요.”

▷뇌의 유전은.

“그런 거 없어요. 어려서부터 자신감을 갖고 사는 게 중요합니다.”

▷뇌를 진화론으로 보면 인간의 발달 과정은.

“뇌의 껍데기인 신피질이 점점 발달했죠. 인간의 신피질은 원숭이보다 10배, 쥐보다 100배나 커요. 생각하는 게 동물에겐 없죠. 그게 발달하면서 인류사회가 발전한 거죠.”

▷뇌도 바꿀 수 있습니까.

“아직 없죠. 파킨슨병 환자에게 스템 셀(식물성 줄기세포) 시도는 해봤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했죠.”

▷뇌졸중,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완치는 언제쯤 가능할까요.

“모르죠. 아직 완치는 못해요. 그런 병에도 여러 가지가 있죠. 깜빡깜빡 하는 단순 건망증에서 중병까지요. 파킨슨병도 여러 가지 상태가 있고.”

▷치매 환자가 많은데요.

“그 전에도 있었는데 숫자가 늘어나는 거죠. 나이가 들면 뇌의 능력도 떨어진다고 많이들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80세가 되면 뇌세포의 5~6%가 죽을 뿐이에요. 뇌는 세포의 수에 의해 조절되는 게 아닙니다. 늙어서 머리가 안 돌아가서 일을 못하겠다는 말은 근거가 없어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머리를 쓰지 않으니까 쇠퇴하는 겁니다.”

정구학 편집국 부국장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