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부동산 규제를 보는 韓銀의 속앓이
“사실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죠.”

한국은행에서 거시건전성 정책을 담당하는 한 관계자의 한숨이다. 최근 급물살을 탄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완화론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한은의 견해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부동산시장의 대표적 규제인 LTV·DTI를 완화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부동산시장을 활성화해 경기회복 속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섣불리 규제를 풀었다간 한국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가 급증할 수 있다.

한은에도 남의 집 일만은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들은 거시건전성 유지를 책무로 삼았다. 통화정책만으로는 금융시스템 위기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아서다. 거시건전성 정책의 대표 사례가 LTV·DTI다. 김중수 전 한은 총재는 지난 4월 “LTV·DTI 규제가 주택시장 과열을 억제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LTV·DTI는 한은이 아니라 금융위원회 소관이다. 금융위에 한은 부총재가 참석할 수 있지만 캐스팅보트 이상의 역할을 하긴 어렵다.

한은 안에선 ‘LTV·DTI 수단을 한은이 갖고 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홍콩 등 해외에선 LTV·DTI를 중앙은행이 결정한다”며 “거시건전성은 중앙은행, 미시건전성(개별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은 금융당국이 맡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주장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3월 인사청문회에서 “한은, 금융감독원, 금융위 등이 각각 금융안정 수단을 따로 갖고 있어 조화롭지 못하다”며 금융안정담당 협의체 구성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한은의 주도권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이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속앓이 하는 한은을 삐딱하게 보는 시선도 있다. 한은 출신의 한 인사는 “2000년대 초 LTV·DTI 규제를 논의할 때 한은은 ‘신용정책은 금융당국 몫’이라며 소극적이었다”며 “정책수단을 한 번 잃기는 쉬워도 되찾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유미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