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강서구 녹산이노밸리의 삼성전기 부산공장 직원들이 파워인덕터 생산공정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기 제공
부산 강서구 녹산이노밸리의 삼성전기 부산공장 직원들이 파워인덕터 생산공정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기 제공
18일 부산 강서구 녹산이노밸리에 있는 삼성전기 부산공장의 파워인덕터 생산라인. 오색 불빛이 쉼없이 깜박거리는 10여대의 검사장비 선반 위로 도금 공정을 거친 깨알 크기(2×1.2㎜)의 박막형 파워인덕터들이 끊임없이 옮겨져왔다. 테스트 공정을 마친 파워인덕터는 플라스틱 롤 필름으로 포장돼 출고장으로 옮겨졌다.

파워인덕터는 스마트폰 등 디지털기기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으로 칩이나 센서의 전압을 안정적으로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디지털기기뿐 아니라 전기자동차 신재생에너지 등 전원이 쓰이는 기기에는 필수적이다.

지헌흠 삼성전기 부산공장 LCR제조팀장은 “기기의 성능이 좋아질수록 고압의 전류를 요구하기 때문에 파워인덕터 수요가 커질 수밖에 없어 시장 전망이 밝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등의 거래처로부터 주문량이 꾸준히 늘고 있어 하루 3교대 체제로 휴일 없이 완전가동되고 있다”며 “주력 제품인 전자기판과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를 주로 생산해온 부산공장이 더 바빠졌다”고 전했다.

○제2의 MLCC 신화 쓴다

파워인덕터 세계 시장 규모는 7조원 안팎이다. 무라타, TDK, 타이요유덴 등 일본업체들이 강자다. 반면 10여년 동안 파워인덕터를 생산해온 삼성전기는 지난해 1500억원 매출에 그쳤다. 시장점유율은 3%로 미미하다. 그렇다 보니 회사 내에서도 파워인덕터사업부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올 들어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박막형 파워인덕터의 기술력이 세계시장을 압도할 수 있을 만큼 탄탄해졌기 때문이다. 최치준 삼성전기 사장이 향후 세계시장을 석권할 제품으로 파워인덕터를 꼽았을 정도다.

삼성전기는 파워인덕터 매출 목표를 2017년 1조원으로 잡고 있다. 지 팀장은 “중국의 주요 스마트폰업체 등에 소량이지만 제품 공급을 시작했다”며 “이들 업체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출시할 신제품에는 삼성전기의 파워인덕터가 상당수 탑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파워인덕터가 MLCC의 성공신화를 이을 유망 제품으로 꼽힌다. 삼성전기는 1980년대 MLCC 사업에 도전했다가 일본 업체들의 기술력에 눌려 애를 먹었으나, 2000년대 중반 고부가가치 소형제품 개발에 성공하면서 연매출 2조원의 사업으로 일궈냈다. MLCC사업을 키워낸 주역이 바로 최 사장이다.

○소형화 기술은 세계 최고

3년의 시행착오 끝에 박막형 파워인덕터를 개발, 지난해 2월 부산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한 삼성전기는 작년 말 세계 최소형 파워인덕터를 만들어내는 성과를 올렸다. 현재 가로 2㎜, 세로 1.6㎜ 크기인 무라타 등 일본업체 제품에 비해 삼성전기 제품은 세로 길이가 0.4㎜ 짧다. 게다가 조만간 가로 1.6㎜, 세로 0.8㎜로 더 작아진 신제품을 내놓는다. 모바일 부품의 핵심 경쟁력인 소형화 능력에서 삼성전기가 앞서가고 있다는 얘기다.

신혁수 삼성전기 부산EMC제조그룹장은 “소형화 부문에서 당분간 경쟁자가 없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삼성전기가 소형화 경쟁에서 한발 앞서게 된 것은 제조방식의 혁신 덕분이다. 얼레처럼 생긴 도체에 코일을 감는 권선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소형화 등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코일을 얇게 쌓는 박막방식이라는 새로운 제조방식을 적용했다.

신 그룹장은 “박막 방식은 일일이 코일을 감는 권선방식에 비해 생산성이 20~30%가량 뛰어난 데다 소형화도 훨씬 용이한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원재료 등 내재화 박차

삼성전기는 박막 파워인덕터에 ‘HEPI(High Efficiency Power Inductor)’라는 브랜드를 붙였다. 모바일기기의 두뇌 격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에는 스냅드래곤(퀄컴) 엑시노스(삼성전자) 같은 브랜드를 쓰지만 일반 부품에는 브랜드를 쓰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조치다. 지 팀장은 “파워인덕터의 대명사로 키우기 위해 사내 공모를 거쳐 브랜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부산공장 한쪽에 원료동 건물도 짓고 있다. 지 팀장은 “이달 말부터 MLCC와 파워인덕터의 원재료인 세라믹파우더 등을 직접 생산하게 된다”며 “원재료 내재화를 통해 제품 경쟁력이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