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규모의 육상 무기·방어 장비 전시회인 ‘유로 사토리’. 예년에 못 보던 부스가 하나 새로 만들어졌다. 무기시장에 수십년간 얼굴을 내민 적이 없던 일본 전시관이다. 유로 사토리에는 미쓰비시중공업과 가와사키중공업, NEC, 히타치 등 13개 일본 방위산업체가 참가했다.

지난 4월 일본 정부는 무기 수출을 사실상 금지한 ‘무기 수출 3원칙’을 47년 만에 개정해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일본 방산기업들은 연간 3950억달러(약 400조원·2012년 100대 방산기업 매출기준)에 달하는 전 세계 무기시장을 놓고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링’에 오르게 됐다. 방위산업을 일본 경제의 새 성장동력으로 삼고 군사력을 키우고자 하는 아베 신조 정부의 ‘야심’이 반영된 행보라는 분석이다.
◆무기 수출 나선 일본 방산업체

‘방산 마피아’로 불릴 정도로 그들만의 영역인 세계 무기시장에서 일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 최신호(6월16일자)에 따르면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전보장회의’(일명 샹그릴라 대화)에서도 겉으론 중국을 견제하는 내용이 주로 논의됐지만, 수면 밑에서는 일본의 무기 수출이 화제가 됐다.

다이아몬드는 자위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 “여러 참가국 국방 관계자들로부터 일본 무기 수출 문의를 받았다”고 전했다. 일본 방위성은 무기 수출 3원칙 개정이 추진되던 지난해부터 이탈리아 독일 노르웨이 등 유럽 국가는 물론 이스라엘 베트남 등 11개국과 무기 및 방산기술 협력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일본 정부는 무기 개발과 취득, 수출을 총괄하는 조직인 방위장비청(가칭)을 이르면 내년 여름 신설할 예정이다.

◆군수제조업체에서 출발한 日 기업들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국가별 무기 수출(2012년 기준)에서 미국이 663억달러로 1위다. 이어 러시아(48억달러) 프랑스(44억달러) 중국(21억달러) 등의 순이다. 일본 방산업체들은 그동안 무기를 수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위대 납품에만 의존해왔다. 현재 세계 100대 방산기업에 미쓰비시중공업(29위) NEC(45위) 가와사키중공업(51위) 미쓰비시전기(55위) 등 9개사가 포함돼 있다. 한국은 삼성테크윈(54위) 한국항공우주산업(67위) LIG넥스원(84위) 한화(100위) 4개사가 들어 있다.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일본 최대 방산업체인 미쓰비시중공업은 1884년에 창업했다. 가와사키중공업이 1878년, IHI(이시카와지마-하리마중공업)가 1853년에 설립되는 등 주요 방산기업들이 모두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 가와사키중공업 IHI는 현재 전체 매출 중 방산 분야가 일부에 불과하지만 출발 자체는 군수 제조였다. 2차 대전 때 활약한 전함 ‘야마토’와 전투기 ‘제로센’을 만든 회사가 미쓰비시중공업이다. 지난해 이 회사의 방산 부문 매출은 3165억엔으로, 전체 매출의 9.4%를 차지했다. 일본 최초로 제트엔진을 개발한 IHI는 지난해 방산 부문에서 483억엔의 매출을 올렸다.

◆수출 1호에 대한 관심 집중

최근 일본 기업들이 생산하는 군수 제품 중 해외 국방 관계자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일본 신메이와중공업이 개발한 수륙양용 비행정 ‘US-2’다. 110억엔의 고가지만 인도가 이미 구입의사를 밝혀 협상 중이다. 호주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잠수함(550억엔)과 1000~2000t급 소형 함정 등도 수출 가능성이 높다.

일본 육상자위대 주력 전차인 미쓰비시중공업의 ‘10식 전차’는 일본 하이테크의 결정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선 일본 기업들의 ‘무기 수출 대박’ 기대가 환상에 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이아몬드는 “일본 방산업체들은 지난 40년 가까이 정부 보호 속에 지내면서 고비용과 비효율이 고질병처럼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무기 가격이 비싼 데다 실전 경험이 없다는 점도 수출에 약점으로 꼽힌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