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미술과 음악
우리가 학교 음악시간에 풍금 소리에 맞춰 연습했던 도-레-미-파-솔-라-시-도는 이 7음계에 바탕을 둔 것으로 도에서 시작해 도로 끝난다. 첫 번째 도와 두 번째 도는 진동수가 1 대 2의 차이를 보이는데, 이것을 1옥타브라고 한다.
혹자는 피타고라스가 음악의 아버지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별개로 알았던 수학과 음악이 뜻밖에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니 말이다. 그러나 피타고라스가 우주 자연의 질서와 비례를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는 점을 알고 나면 그리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그는 평소 자신의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우주 자연의 모든 현상에 관심을 가졌다. 그런 관심이 그를 음악학의 비조로 만든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음악관은 철학자 보에티우스(475~525)에 의해 중세시대로 전해졌다. 그는 고대의 음악원리를 집대성한 ‘음악원리’에서 음악을 우주, 인간, 악기의 음악 등 세 범주로 구분했다. ‘우주의 음악’은 천상과 지상의 모든 자연 질서에서 찾을 수 있는 조화를 의미하며, ‘인간의 음악’은 소우주로 일컬어지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 또는 몸의 각 부분 간 조화를 뜻하고, ‘악기의 음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음악으로 기악과 성악을 포함한다. 음악이란 곧 수적인 비례로 산출된 우주의 조화 원리였다.
이런 생각은 건축에서도 뚜렷이 나타났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건축론’에서 인간의 신체를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했는데 그 근거로 인간의 팔과 다리는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인 원과 정사각형을 정확히 그려낸다는 사실을 들었다.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으로 지칭되는 이 원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에서도 확인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우주 구조의 대칭성에서 안정성과 균형미를, 일정한 비례를 보이는 구조 속에서 비례미를 발견했다. 이런 우주질서에서 도출해낸 균형, 비례 같은 원리는 르네상스 이래 음악과 미술의 미학적 근거가 됐다.
음악이 수학적으로 계산된 조화의 원리를 청각적으로 구현한 것인 데 비해 미술은 그것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음악은 음표로 그 값을 표시하고 미술은 점, 선, 면, 명암, 색채 등의 조형요소로 조화미를 달성한다. 이런 조형 요소가 서사적인 메시지와 결합하면 구상적 회화와 조각이 되는 것이고 서사가 빠지면 추상미술이 된다. 결국 서양인들에게 음악과 미술은 수학에서 태어난 이란성 쌍생아인 셈이다. 서양 고전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것은 수학적이고 이성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 예술가들에게 미술과 음악은 별개가 아닌 한 몸이다. 우리와는 다르게 서양의 많은 화가들은 음악적 요소를 염두에 두고 그림을 그렸으며 음악가들은 시각적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작곡했다. 동양 화가들이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다”는 원리를 염두에 뒀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가. 근대는 물론 현대의 많은 서양 미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음악적인 조화미를 구축하려고 노력했다. 그중에서도 파울 클레만큼 음악적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는 작품을 많이 남긴 작가도 드물다.
특히 그는 1920년대 이후 ‘다성음악적 구성’ 원리에 따라 작품을 제작했다. 서로 다른 색면을 오버랩시켜 색들이 서로 침투하고 뒤섞이게 함으로써 마치 여러 선율 (다성음악)의 조합으로 청중을 매료시키는 교향악의 독특한 이미지를 창조했다. ‘붉은 푸가’(1921)나 ‘다성음악’(1932)에는 그런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클레가 피타고라스에서 비롯된 운율의 조화미를 그림 속에 구현한 데 비해 표현주의 화가인 바실리 칸딘스키는 전통 음계에 반기를 든 음악가 쇤베르크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쇤베르크는 7음계에 바탕을 둔 서양의 전통음악이 작곡가의 자유로운 영감을 제약한다고 보고 전통적 규칙을 버리고 무조(無調)음악, 12음기법을 창시했다. 그와 오랜 친분이 있던 칸딘스키는 쇤베르크의 혁신적 음악에 고무돼 자유롭고, 표현적인 추상 회화를 창안한다. 그가 1910년대부터 발표한 ‘구성’ 연작 속에서 꿈틀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현란한 색채의 형상은 무조음악의 시각적 형상화다.
서양에서 미술이 건축과 한 몸이듯 음악도 미술과 한 몸이다. 이것은 곧 미술 감상은 음악 감상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제 독자는 서양 미술을 감상할 때 또 하나의 기쁨을 갖게 됐다. 그림에서 음악을 듣고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보는 기쁨 말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