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인 시장 예측과 과감한 베팅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명성을 떨치던 헤지펀드 거물들이 올 들어 시장 평균에도 못 미치는 형편없는 성적표를 내놓으면서 체면을 구기고 있다. 특히 글로벌 거시경제 전망을 토대로 채권과 외환시장을 쥐락펴락하던 매크로 헤지펀드들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덩치 값도 못한다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
[글로벌 금융리포트] 경기 예측 실패…체면구긴 '펀드 전설들'
맥 못 추는 매크로 헤지펀드

미국 매크로 헤지펀드 업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루이스 베이컨과 폴 튜터 존스는 올해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와중에 수익은커녕 손실을 내 명성이 추락하고 있다.

존스는 1987년 ‘블랙먼데이’를 정확히 예측해 주식을 공매도하고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하에 베팅, 하루 만에 1억달러의 수익을 올리면서 헤지펀드계의 새로운 역사를 쓴 인물이다. 하지만 존스가 자신의 이름을 따 만든 130억달러 규모의 튜더인베스트먼트는 올해 수익률이 -4.4%에 그쳤다.

또 다른 거물 베이컨이 이끄는 무어캐피털도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5%의 손실을 기록했다. 1990년 펀드 결성 이후 24년간 누적 순이익이 165억달러에 달하지만 강세장에서 손실을 내면서 펀드 명성에 금이 갔다.

지난해 세계 40대 부호(포브스 선정)에 이름을 올린 앨런 하워드가 운용하는 마스터펀드도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4%의 손실을 냈다. 이 펀드는 2003년 펀드 결성 후 한 번도 손실을 낸 적이 없었다.

매크로 헤지펀드는 올해 일본 주식시장이 정부의 부양책에 힘입어 지난해의 급등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투자했다. 유로존 경기도 강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확신하고 과감하게 베팅했다. 하지만 일본 닛케이지수가 올 들어 7% 하락하고, 유럽도 장기불황에 빠질 조짐을 보이면서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

반면 미국 시장은 상대적으로 투자를 소홀히했다. S&P500지수가 5.0% 오르고, 미국 채권시장 수익률을 나타내는 바클레이즈채권지수가 3.4% 올랐지만 펀드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이유다.

추억이 된 매크로 펀드 전성시대

매크로 펀드는 헤지펀드의 역사를 이끌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2년 영국 중앙은행과 환율 전쟁을 벌여 영국을 외환위기로 몰아넣었던 전설적 투자자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국가 단위의 투자를 진행하기 때문에 펀드 규모와 레버리지 비율이 크다는 특징이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매크로 펀드에 기회였다. 1929년 대공황 이후 약 80년 만에 찾아온 경제 위기는 매크로 펀드에 천국과도 같았다. 이들은 시장의 공포와 이에 따른 변동성 확대를 투자 수익의 기회로 활용했다.

2008년 11월20일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가 80.86을 기록,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자 매크로 펀드들은 공매도에 나서며 지수 하락을 부추겼다. 패닉에 빠진 시장은 요동쳤고 공매도 물량이 쌓이면서 지수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S&P500지수가 2008년 한 해 동안 37% 빠졌지만 매크로 펀드들은 4.8%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대표적 매크로 펀드 폴슨앤드코를 운용하는 존 폴슨은 막대한 차입금을 이용한 과감한 투자로 200억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매크로 펀드에 투자자들은 열광했고 막대한 돈이 펀드로 유입됐다. 헤지펀드 조사업체 헤지펀드월드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1865개의 매크로 펀드가 운용 중이다. 2008년(1233개)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운용자산도 같은 기간 2787억달러에서 5077억달러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시장이 움직여야 펀드도 산다

전문가들은 매크로 펀드의 부진 이유를 너무 커져버린 덩치와 시장 변동성 감소에서 찾고 있다. 변동성이 작아지면 저평가된 자산을 사고 고평가된 자산을 파는 롱쇼트 전략 등 매크로 헤지펀드들의 전략 실효성이 떨어지기 쉽다.

올 들어 주식과 원자재시장 구분 없이 거래량이 줄면서 시장 변동성은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다. S&P500 주식의 2분기 거래량은 5년 평균치를 29% 밑돌고 있다. 올 1분기에 비해서도 17% 하락했다. 올 들어 미국 채권시장 거래량은 7340억달러로 지난 10년래 최저 수준으로 감소했다.

비대해진 몸집도 문제로 지적된다. 시장이 예상과 달리 움직일 경우 신속한 포지션 변화가 중요한데 운용자산이 수십억달러가 넘는 매크로 펀드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커 포트폴리오를 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매크로 헤지펀드들이 올해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며 전체 헤지펀드 수익률 1.2%에 못 미치는 것도 덩치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 매크로 헤지펀드

환율이나 금리 등 거시(macro) 변수에 대한 세계 각국의 정책 변화를 예상해 채권 외환 상품시장 등에 투자, 고수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를 말한다. 이들은 시장의 가격 변동성이 커질수록 공격적으로 돈을 빌려 투자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특징이 있다.

이심기/김순신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