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농가 파고든 중국산 밀수 농약
“중국에서 밀수된 농약을 사용하다 농사를 망치더라도 다들 쉬쉬하기 바빠요. 밀수 농약을 쓴 농민은 처벌받게 되고, 중국산 농약으로 재배한 농작물이라는 사실이 거래처에 알려지면 좋을 게 없으니까요.”(농촌진흥청 관계자)

중국산 무허가 농약이 판치는 한국 농촌의 실태에 대한 기사(본지 6월21일자 A1·5면 참조)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들은 말이다. 국내 배 재배면적의 77%에 사용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중국산 농약을 밀수하려던 일당이 검거되는 등 농약 밀수 문제가 심각한 만큼 관계 당국도 비상이 걸려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실상은 달랐다. 농진청과 농협중앙회 등 관련 기관들은 무허가 농약 사용에 따른 피해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불법 농자재 유통과 사용을 단속해야 하는 농진청은 인력 부족으로 인한 단속의 어려움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지역 단위 농협을 총괄하는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우리는 농민들에게 판매하는 농약을 구입하는 게 주업무라 불법 농약에 관해선 아는 게 별로 없다”고 했다.

겉으로만 보면 한국의 농약 안전 규제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2010년과 2012년 세계경제포럼의 농약규제분야 평가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농진청은 지난 4월 인체에 유해한 농약 사용을 금지시킨 공로로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또 농약 음독 자살의 주범으로 꼽히던 제초제 ‘그라목손’을 비롯해 유해성 논란이 제기된 13종의 농약 생산을 금지해 서류상으로는 한국에서 인체에 유해한 농약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관계 당국이 이 같은 성과에 취해 있는 사이 한국 농촌은 중국산 무허가 농약에 조금씩 젖어들어 이제는 국산 농산물로 밥상을 차린 국민의 건강까지 위협받고 있다. 기사에 달린 수백 개의 댓글 대부분도 무책임한 농정 당국에 대한 비판과 믿고 사먹었던 국산 농산물에 대한 실망을 드러내는 내용이었다.

“이런 식으로 중국산 농약을 사용할 거라면 굳이 국산 농산물을 고집할 필요가 없겠다”는 어느 네티즌(아이디 leec****) 말대로 중국산 무허가 농약 사용이 국산 농산물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농정 당국의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홍선표 지식사회부 기자 l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