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떨어지면 수입품 가격이 내려가 소비자가 이득을 본다.’ 경제학원론에 나오는 이 상식이 한국 화장품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고 있다. 올 들어 원·달러, 원·유로, 원·엔 등의 환율이 일제히 하향세인 가운데 유명 수입 화장품 브랜드들은 오히려 가격을 줄줄이 올리고 있다.
한국 소비자 봉으로 보는 외국 화장품
○수입 화장품의 ‘환율 역주행’

22일 업계에 따르면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디올’은 다음달 1일 일부 제품의 백화점 가격을 평균 1.8%, 면세점 가격은 평균 3% 인상한다.

‘프레스티지 화이트 UV 콤팩트’는 12만원에서 12만5000원으로 4.2%, ‘자도르 오드뚜왈렛(50mL)’ 향수는 11만5000원에서 11만6000원으로 0.9% 오른다. ‘어딕트 립스틱’은 3만9000원에서 4만원으로 2.6% 오른다.

고가 프랑스 화장품 ‘시슬리’도 다음달부터 백화점 가격을 평균 3.8% 올린다. 인기 상품인 ‘에뮐씨옹 에꼴로지끄’ 에센스는 22만원에서 23만원으로 4.5% 비싸진다. 역시 프랑스 브랜드인 ‘클라란스’도 다음달 1일 국내 가격을 평균 3~4% 올린다.

휴가철을 앞두고 해외 여행객이 몰리는 면세점에서도 화장품·향수 가격이 잇달아 인상되고 있다. P&G의 일본계 화장품 브랜드 ‘SK-Ⅱ’는 다음달 1일 국내 면세점 가격을 평균 3% 올린다. 간판 제품인 ‘페이셜 트리트먼트 에센스’ 가격은 여성용(250mL)이 163달러에서 171달러로 4.9%, 남성용(215mL)은 148달러에서 155달러로 4.7% 뛴다. 같은 날 ‘랑방’ 향수의 면세점 가격도 평균 7% 인상되며, ‘몽블랑’과 ‘지미추’ 향수는 평균 5% 오른다. ‘불가리’ 역시 향수값을 소폭 인상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환율과 따로 노는 한국 가격표

수입 화장품 업체들은 가격 인상 이유로 ‘본사 방침’을 들고 있다. 올 3월에도 일부 제품 가격을 올렸던 디올 측은 “본사 차원의 가격 조정”이라며 “3월에 가격을 올리지 않은 품목 중 일부를 이번에 인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값을 올리는 한 향수 브랜드 관계자도 “아시아 면세 시장 전반의 가격 조정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수입 화장품의 잇단 가격 인상이 국내 매출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고급 화장품의 핵심 판매처인 백화점에선 지난해 상당수 수입 브랜드의 매출이 전년 대비 뒷걸음질했다.

롯데백화점의 화장품 매출 증감률(전년 대비)은 2011년 11%에서 2012년 3.7%, 지난해 -2.4%까지 꺾였고 올 1~4월에도 0.3%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환율과 연동해 가격을 내린 사례가 없진 않다. ‘랑콤’ ‘에스티로더’ 등이 최근 1~2년 사이 환율 하락을 근거로 일부 화장품 가격을 인하한 적이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환율 하락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 이후 가격 인상 행진을 이어갔다. 이 때문에 한국 소비자를 일명 ‘호갱’(만만한 고객) 취급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2월 ‘샤넬’이 기초 화장품과 향수 가격을 평균 5%, ‘베네피트’도 평균 7.4% 인상했다. ‘겐조’ ‘지방시’ ‘펜디’ ‘마크제이콥스’ 등 10여개 향수 브랜드도 올초 면세점 가격이 올랐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