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1일부터 회고전을 여는 정상화 화백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 전시된 단색화 시리즈 ‘무제 08-3-14’ 앞에 서있다. 갤러리현대 제공
오는 7월1일부터 회고전을 여는 정상화 화백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 전시된 단색화 시리즈 ‘무제 08-3-14’ 앞에 서있다. 갤러리현대 제공
“본질적인 아름다움에 다가서려는 욕구가 저를 단색 추상화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한국 단색화의 거장 정상화 화백(83)이 추상화에 도달하게 된 동기는 생각보다 단순 명료했다. 다음달 1일부터 한 달간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여는 정 화백을 26일 미술관에서 만나 작품세계를 들어봤다. 그는 이번 전시에 1970년대 이후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모두 45점을 출품한다.

정 화백은 서울대 회화과 재학시절 미국 대사관에서 본 라이프 잡지의 컬러 화보를 통해 서양 현대미술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됐다고 한다. “잡지 속에서 발견한 추상화의 조형과 컬러가 묘하게도 제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그는 1950~1960년대 한국 사회의 어두운 상황과 정신적 분위기를 심층적으로 표현하는 데 서구의 앵포르멜(추상회화의 한 경향)이 적합하다고 판단해 추상화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에는 전위 그룹에 가담해 다양한 재료와 색채의 실험을 시도했다.

그러다가 서울예고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67년 훌쩍 파리로 떠났다. “교과서에서 본 그림들을 직접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는 그는 이때부터 1992년까지 25년간 프랑스와 일본에 머물며 의욕적으로 작품활동을 펼쳐 나갔다. 최종 결과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그만의 단색화의 세계를 구축한 것도 이 시절이었다.

정 화백의 작업은 시간과의 투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캔버스 위에 고령토로 초벌칠을 해 말린 다음 캔버스를 규칙적인 간격으로 가로 세로로 접어 고령토를 들어내고 그 빈자리를 물감으로 채우는 작업을 6~7회 반복한다”는 그는 작품 한 점 하는 데 1년이 걸릴 때도 있다고 말한다. 마치 고려청자를 빚을 때 태토를 긁어내고 그 자리에 검정 혹은 흰색 흙을 메우는 상감기법을 연상케 한다. 작가는 그것을 ‘뜯어내기’와 ‘메우기’로 설명한다.

그의 그림은 얼핏 보면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단색의 면처럼 보인다. “처음에 제 작품을 본 사람들이 그림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더군요. 자세히 보면 거기에 선도 있고 면도 있고 네모꼴 균열이 보여주는 변화무쌍한 형상이 자리하고 있는데 말이죠.”

최근 해외 경매시장에서 1970년대 한국 단색화가 주목받고 있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당연한 현상”이라며 “명품은 빛을 보는 시기에 차이가 있을 뿐 언젠가는 진가를 드러내기 마련”이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현대미술의 요체는 실험정신”이라는 그는 요즘 젊은 세대의 실험정신 부족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젊은 시절 실패한 실험들을 목록으로 작성해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요즘도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은 욕구가 용솟음친다는 정 화백은 “그런 면에서 내가 아직 젊은가 보다”라며 활짝 웃었다. 최근 들어서도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는 그는 여전히 청년임이 분명하다. (02)2287-3500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