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남편에 본처가…" 근대판 '사랑과 전쟁'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경성 고민상담소
전봉관 지음 / 민음사 /324쪽 / 1만9800원
전봉관 지음 / 민음사 /324쪽 / 1만9800원
꽃봉이는 서판서의 외아들인 꼬마 만득에게 시집을 간다. 만득이의 이복 누이인 수진은 꽃봉이를 미워한다. 수진은 전 남편 조병호가 서판서댁 몸종 옥분이와 불륜 관계를 맺자 꽃봉이에게 누명을 씌워서 친정으로 쫓아낸다. 어린 만득이는 놀라운 기지를 발휘해 이복 누나의 모함을 밝혀내고 다시 꽃봉이를 색시로 맞는다.
1970년에 개봉한 영화 ‘꼬마 신랑’(김정훈·문희 주연)의 줄거리다. 영화의 낭만적인 결말을 보면 만득과 꽃봉이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지 않았을까. 전봉관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가 지은 《경성 고민상담소》를 보면 그렇지도 않았을 것 같다. 저자는 1930년대 신문들이 ‘어찌하리까’ 등의 표제를 달고 남녀·가정 문제를 상담해 준 독자문답란에 실린 100여편의 사연을 소개하며 당대 사회의 구조적 병폐와 근대인들의 일그러진 일상을 분석·추적한다.
1930년대는 근대와 전근대의 문화와 가치가 혼재하면서 ‘성 윤리의 아노미 시대’라고 할 만큼 혼란했던 시기다. ‘아이까지 낳고 보니 남편에게 멀쩡한 본처와 자식이 있더라’는 ‘제2부인’의 하소연, 남편에게 버림받고 시댁에서 쫓겨나도 법적으로 보호받을 길이 없는 본처의 신세 한탄 등 ‘어찌하리까’ 사연들의 상당수가 조혼 풍습에서 비롯된 문제들이다.
강간과 간통을 구분하지 못하는 전근대적 사고방식도 드러난다. 괴한에게 성폭행당한 아내를 ‘간통녀’로 몰고 “간음한 여자와는 살 수 없다며 재혼 비용을 요구하는 남편을 상담한 변호사는 “다른 남자와 정을 통했다는 것은 법률상으로나 도덕적으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지만 처가 잘못을 후회하니 용서하는 게 남자의 도리”라고 충고한다.
처제를 임신시켜 놓고 ‘자살하라’는 형부, 호적등본을 위조해 미혼이라 속이고 여성을 유혹하는 유부남 등 이 책에 소개된 사연들을 보면 자유연애가 도입된 지 한 세대도 지나지 않은 시기에 지금도 상상하기 힘든 방종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됐다. 저자는 “과거가 현재보다 애정 문제에 대해 훨씬 보수적이었을 것이라는 믿음은 젊은 시절 기억을 망각한 기성세대가 만들어 낸 신화”라며 “우리는 물질적인 면뿐 아니라 윤리적인 면에서도 과거에 비해 개선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1970년에 개봉한 영화 ‘꼬마 신랑’(김정훈·문희 주연)의 줄거리다. 영화의 낭만적인 결말을 보면 만득과 꽃봉이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지 않았을까. 전봉관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가 지은 《경성 고민상담소》를 보면 그렇지도 않았을 것 같다. 저자는 1930년대 신문들이 ‘어찌하리까’ 등의 표제를 달고 남녀·가정 문제를 상담해 준 독자문답란에 실린 100여편의 사연을 소개하며 당대 사회의 구조적 병폐와 근대인들의 일그러진 일상을 분석·추적한다.
1930년대는 근대와 전근대의 문화와 가치가 혼재하면서 ‘성 윤리의 아노미 시대’라고 할 만큼 혼란했던 시기다. ‘아이까지 낳고 보니 남편에게 멀쩡한 본처와 자식이 있더라’는 ‘제2부인’의 하소연, 남편에게 버림받고 시댁에서 쫓겨나도 법적으로 보호받을 길이 없는 본처의 신세 한탄 등 ‘어찌하리까’ 사연들의 상당수가 조혼 풍습에서 비롯된 문제들이다.
강간과 간통을 구분하지 못하는 전근대적 사고방식도 드러난다. 괴한에게 성폭행당한 아내를 ‘간통녀’로 몰고 “간음한 여자와는 살 수 없다며 재혼 비용을 요구하는 남편을 상담한 변호사는 “다른 남자와 정을 통했다는 것은 법률상으로나 도덕적으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지만 처가 잘못을 후회하니 용서하는 게 남자의 도리”라고 충고한다.
처제를 임신시켜 놓고 ‘자살하라’는 형부, 호적등본을 위조해 미혼이라 속이고 여성을 유혹하는 유부남 등 이 책에 소개된 사연들을 보면 자유연애가 도입된 지 한 세대도 지나지 않은 시기에 지금도 상상하기 힘든 방종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됐다. 저자는 “과거가 현재보다 애정 문제에 대해 훨씬 보수적이었을 것이라는 믿음은 젊은 시절 기억을 망각한 기성세대가 만들어 낸 신화”라며 “우리는 물질적인 면뿐 아니라 윤리적인 면에서도 과거에 비해 개선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