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봉이는 서판서의 외아들인 꼬마 만득에게 시집을 간다. 만득이의 이복 누이인 수진은 꽃봉이를 미워한다. 수진은 전 남편 조병호가 서판서댁 몸종 옥분이와 불륜 관계를 맺자 꽃봉이에게 누명을 씌워서 친정으로 쫓아낸다. 어린 만득이는 놀라운 기지를 발휘해 이복 누나의 모함을 밝혀내고 다시 꽃봉이를 색시로 맞는다.

[책마을] "남편에 본처가…" 근대판 '사랑과 전쟁'
1970년에 개봉한 영화 ‘꼬마 신랑’(김정훈·문희 주연)의 줄거리다. 영화의 낭만적인 결말을 보면 만득과 꽃봉이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지 않았을까. 전봉관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가 지은 《경성 고민상담소》를 보면 그렇지도 않았을 것 같다. 저자는 1930년대 신문들이 ‘어찌하리까’ 등의 표제를 달고 남녀·가정 문제를 상담해 준 독자문답란에 실린 100여편의 사연을 소개하며 당대 사회의 구조적 병폐와 근대인들의 일그러진 일상을 분석·추적한다.

1930년대는 근대와 전근대의 문화와 가치가 혼재하면서 ‘성 윤리의 아노미 시대’라고 할 만큼 혼란했던 시기다. ‘아이까지 낳고 보니 남편에게 멀쩡한 본처와 자식이 있더라’는 ‘제2부인’의 하소연, 남편에게 버림받고 시댁에서 쫓겨나도 법적으로 보호받을 길이 없는 본처의 신세 한탄 등 ‘어찌하리까’ 사연들의 상당수가 조혼 풍습에서 비롯된 문제들이다.

강간과 간통을 구분하지 못하는 전근대적 사고방식도 드러난다. 괴한에게 성폭행당한 아내를 ‘간통녀’로 몰고 “간음한 여자와는 살 수 없다며 재혼 비용을 요구하는 남편을 상담한 변호사는 “다른 남자와 정을 통했다는 것은 법률상으로나 도덕적으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지만 처가 잘못을 후회하니 용서하는 게 남자의 도리”라고 충고한다.

처제를 임신시켜 놓고 ‘자살하라’는 형부, 호적등본을 위조해 미혼이라 속이고 여성을 유혹하는 유부남 등 이 책에 소개된 사연들을 보면 자유연애가 도입된 지 한 세대도 지나지 않은 시기에 지금도 상상하기 힘든 방종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됐다. 저자는 “과거가 현재보다 애정 문제에 대해 훨씬 보수적이었을 것이라는 믿음은 젊은 시절 기억을 망각한 기성세대가 만들어 낸 신화”라며 “우리는 물질적인 면뿐 아니라 윤리적인 면에서도 과거에 비해 개선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