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소녀’를 울린 담쟁이 시처럼 절실하고 절박하게 살아온 기다림의 삶…각박해져가는 사회 그래도 진리에 대한 믿음은 놓지 않았죠.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살랑살랑 따듯한 바람에 연신 들숨을 쉬게 하던 초여름날 저녁 남산 산책로 한편의 담벼락 아래 한 ‘소녀’와 마주 섰다. 담을 타고 올라가는 담쟁이를 가리키며 소녀가 시(詩)를 읊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도종환 ‘담쟁이’) ‘소녀’는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살아왔다고도 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그처럼 딱 들어맞는 사람이 또 있을까. 생각의 청량함이 그랬고,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 또한 그랬다. 얼굴에 살짝 드리운 주름살과 약간은 중후한 목소리만이 그가 살아온 세월을 짐작하게 할 뿐이었다. 주인공은 유중근 대한적십자사 총재(69)다. ‘맛있는 만남’을 위해 약속한 장소는 남산 입구의 비빔밥 전문점 ‘산채집’이다.

○이대 ‘메이퀸’ 9남매 집안 맏며느리로

담쟁이 벽을 뒤로하고 길 건너 식당으로 들어서는데 유 총재가 발걸음을 멈췄다. 입구에 놓인, 두 아름은 돼 보이는 술독에 코를 대고는 식당 주인에게 “언제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보름은 있어야 한다는 대답에 “친구들하고 또 와야겠네”라며 식당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음식 이야기부터 꺼냈다.

“다들 대한민국 대표 음식이 불고기라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비빔밥인 것 같아요. 특히 나물 말이에요. 향긋한 나물 하나하나의 맛을 볼 수도 있고, 그것들이 어우러지면 또 다른 맛을 내잖아요. 게다가 고추장보다 된장으로 맛을 내는 비빔밥을 좋아하는데. 이 집이 참 잘하더라고요.”

수더분한 말투의 음식 이야기가 영락없는 옆집 아주머니였지만, 유 총재의 이력은 범상치 않다. 1944년 서울에서 태어나 6·25전쟁 때 제주도까지 피란을 다녀온 그는 덕수초등학교를 거쳐 경기여중, 경기여고를 나왔다. 학창 시절 내내 반장을 도맡았다. 고교 졸업 후 이화여대 영문과에 진학했다. “영문도 모르고 영문과에 갔다”고 유 총재는 말했지만, 당시 이대 영문과는 여성 수재들이 모인 곳이었다.

“반장을 하고 싶어서 했던 게 아니에요. 친구들이 자꾸 부추겨서 했던 거예요. 좋지도 않았어요. 친구들이 떠들어도 반장이 혼나고, 점심시간에는 선생님 심부름 다니는 일이 많았거든요. 대학 가서는 절대로 안 한다고 다짐했어요.”

물론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대학 3학년 때 친구들의 성화로 문리대 학생회장이 됐고, 얼마 뒤에는 신문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이대 메이퀸에 유중근 양’. 이대 ‘최고의 지성과 미모’라는 ‘메이퀸’ 타이틀을 단 것이다. 이듬해에는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졸업 성적 또한 수석에 가까웠다.

그런 그가 졸업 후 택한 진로는 뜻밖이었다. 대학 4학년 때 처음 ‘선’을 본 유 총재는 6개월 만에 결혼했다. 상대는 황해도 해주 출신 집안 9남매의 장남인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다.

○나를 키운 45년 ‘기다림의 세월’

아삭하게 구운 부추전이 나왔다. 유 총재는 손수 한 조각씩 나눠주며 결혼과 유학 이야기를 꺼냈다.

“유학 시절 남편이 공부를 잘했어요. 당시 교수들이 우수한 학생 부모님께 편지를 보내곤 했었는데, 그 편지를 받은 시아버지께서 그것을 다 제 덕분이라고 격려해주시곤 했죠. 저를 많이 믿어주셨던 거죠.”

유 총재는 결혼 후 남편과 함께 미국 컬럼비아대로 유학을 떠났다. 7년간의 유학기간에 유 총재는 시아버지로부터 해마다 10통 이상의 편지를 받았다. 며느리를 믿고 아껴주는 시아버지가 있었지만, 9남매 집안의 맏며느리 생활이 편안할 리는 만무했을 터, 유 총재는 이때 ‘10년 단위 인생 시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조금은 알고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결혼이 뭔지도 모르고 했잖아요. 갈등이 없을 리 없죠. 하지만 내가 내 주장을 해서 식구들을 이겨봤자 기쁘지도 않고 좋을 것도 없더군요. 10년 단위라는 것은 진정성을 보여주면 알아주겠지 하는 진리에 대한 믿음이랄까요. 뭐 그런 것이었죠.”

남편의 도움도 컸다. “남편이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가족관계에는 시시비비가 없다는 것이죠. 동생을 논리적으로 이기면 동생을 잃는다고 하더군요. 그런 남편을 보면서 같은 생각을 하게 됐지요.”

최고의 학부를 마치고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유 총재는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그리고 한 남자의 아내로 평범하게 살았다. 이대와 경기여고 동문회 차원에서 봉사활동을 꾸준히 했지만, 특정한 직업을 가진 적은 없었다. 대학에서 강의 요청도 있었지만 남편의 완곡한 반대로 뜻을 접었다.

공부를 더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세월이 30여년. 그가 세상에 명함을 내놓게 된 것은 2009년 경기여고 총동창회장을 맡으면서다.

“당시 제게 떨어진 미션이 경기여고 100주년 기념관 설립이었어요. 정말 앞이 캄캄했죠. 맡지 말아야 할 일을 맡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제 마음을 울렸던 시가 ‘담쟁이’예요.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라는 구절처럼, 어떻게 하다 보니 결국은 해냈지요. 지금 생각하면 절실함, 절박함이 힘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모금액이 140억원이나 됩니다.”

‘명문’ 경기여고 총동창회장으로서 보여준 리더십을 인정받은 것일까. 1998년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을 시작으로 2011년 1월 한적 부총재로 활동하던 중 놀라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대한민국 최초 여성 한적 총재

2011년 10월 대한적십자사에 사상 첫 여성 총재가 탄생했다. 한적 창립 106년 만의 ‘사건’이었다.

“총재직 수락 직전에 최종 결정권을 남편에게 줬어요. 어떤 말을 할까 궁금했는데 ‘당신 어쩔 수 없이 해야겠는 걸’ 하더군요. 표현은 서툴렀지만, 응원을 해줬던 거죠. 지금도 남편이 음으로 양으로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작은 돈은 아끼고 큰돈은 크게 쓰라’는 시아버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기도 하고요.” 남편 최 명예회장은 지난해 나눔문화 확산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국민훈장을 받았다.

자원봉사이긴 했지만 13년간의 적십자 활동을 해온 유 총재, 한적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취임과 동시에 사업 리모델링에 나섰다. 우선 4대 취약계층인 노인, 아동·청소년, 다문화가정, 새터민(탈북 이주민)을 돕는 ‘희망풍차’ 사업을 시작했고, 2년 만에 결연 가정을 2만5200가구로 늘렸다. 공공의료 활성화를 위해 희망진료센터를 개설해 지난해에만 3만여명에게 의료 지원을 했다. 연간 300만명을 목표로 헌혈 캠페인도 대폭 강화했다. 지난 2월에는 직접 금강산을 방문해 3년4개월 만에 재개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비빔밥이 바닥을 보이며 여기저기서 놋그릇 긁는 소리가 들릴 즈음, 유 총재는 ‘준비한 이야기’를 꺼냈다. 자원봉사 얘기였다. “적십자에 ‘인도주의 아카데미’를 만들려고 합니다. 자원봉사자 사관학교죠. 세월호 참사 이후 진도 팽목항·체육관, 안산 합동분향소에 매일 가시는 자원봉사자들이 많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죠. 많은 사람이 같이 슬퍼하기는 하지만, 그 슬픔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 행동으로 옮기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적십자가 나서서 50만명, 즉 대한민국 국민의 1%를 자원봉사자로 만들려고 합니다.”

갈수록 각박해져가는 사회, 이겨야 사는 대한민국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내비쳤다. “물질 만능주의가 만연하다 못해 이제는 신뢰나 정직을 이야기하면 가식적이라고 하고, 물질을 강조하면 솔직하다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안타깝습니다. 성공과 열매는 다른 것인데 말이죠.”
[한경과 맛있는 만남] 유중근 한적 총재 "절망의 벽 넘는 담쟁이처럼…'희망戰士' 50만 길러낼 것"
■ 유중근 한적 총재의 단골집 '산채집'
지리산 말린 나물 비빔밥·왕돈가스가 인기 메뉴


[한경과 맛있는 만남] 유중근 한적 총재 "절망의 벽 넘는 담쟁이처럼…'희망戰士' 50만 길러낼 것"
서울의 대표적 데이트 코스인 남산순환도로의 케이블카 탑승장 근처에 있다. 지하철 4호선 명동역 4번 출구로 나와 대한적십자사를 지나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음식점들이 나오는데 그중 맨 위쪽에 자리잡고 있다.

인근에서 한식당 ‘목멱산방’과 이탈리안 레스토랑 ‘촛불’을 운영하는 장경순·강현영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다. 2000년에 문을 열었다.

산채집의 주요 메뉴는 비·전·왕돈가스, 즉 비빔밥과 부추전 그리고 왕돈가스다. 대표 메뉴는 산채비빔밥(7000원). 지리산에서 캐온 묵나물(묵은 나물·말리거나 약간 삶아서 말려 두었다가 이듬해 조리하여 먹는 나물)만을 사용한다. 간장과 된장은 강현영 사장의 고향인 전북 장수군 산서면에서 부모님이 직접 담근 것이다. 직접 기르고 딴 매실로 만든 매실청과 각종 과육을 넣어 만든 고추장에는 산채집만의 비기(技)가 녹아있다는 게 사장 부부의 설명이다.

아삭하게 구워낸 부추전(6500원)은 부추를 듬뿍 넣어 부추 본연의 향긋함을 그대로 살렸다는 평가다. 왕돈가스(8000원)는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 손님들에게 인기 메뉴다.

이 식당을 찾는 손님 중에는 애주가가 많다. 이유는 막걸리다. 유자, 배다리, 덕산, 금정산 산성, 나우누리 등 팔도 명품 막걸리에 무형문화재가 만드는 막걸리, 품평회 1등 막걸리 등을 매일 택배로 받아 판매한다. 병당 5000~6000원, 한 잔(2000원)씩도 판매한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다.

“총재님 야구하셨어요?” 완벽한 시구 폼 뒤에는…

[한경과 맛있는 만남] 유중근 한적 총재 "절망의 벽 넘는 담쟁이처럼…'희망戰士' 50만 길러낼 것"
지난해 5월8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넥센과 LG의 경기. 이날 시구자는 유중근 대한적십자사 총재. 칠순을 앞둔 나이에도 완벽한 투구 자세로 관중들을 놀라게 했다.

경기 보름 전 시구 제안을 받았다는 유 총재는 남편에게 기본 동작을 배웠고, 매일 밤 침대 머리맡에 베개를 여러 개 깔아놓고 수십개씩 투구 연습을 했다고 한다. 맛있는 만남 인터뷰를 앞두고는 하루 전 산채집을 찾아 ‘리허설’을 했다고 털어놨다. ‘유비무환’. 유 총재는 그런 사람이다.

▷1944년 서울 출생
▷1963년 경기여고 졸업
▷1967년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1970년 미국 컬럼비아대 영어언어교육학 석사
▷1984년~ 경원문화재단 이사장
▷2009~2011년 경기여고 경운회 동창회장
▷2011년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2011년~ 대한적십자사 총재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