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시민 안 찾아간 '눈먼 돈' 역무원들이 '꿀꺽'
서울 지하철 교통카드 보증금 횡령 사건은 지하철 역무원들이 시민 돈을 쌈짓돈처럼 횡령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일부 지하철 역무원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와 함께 보증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서울메트로에 대한 비판이 거세질 전망이다.

○횡령금액 최대 7억원 달해

26일 서울 지하철수사대에 따르면 지하철 1호선 서울역 부역장인 장모씨는 이달 초 일회용 교통카드 30장을 보증금 환급기(사진)에 넣어 돈을 빼가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한 시민의 제보로 현장에서 검거됐다. 장씨 등은 교통카드 보증금을 돌려받지 않는 시민들이 많다는 점을 악용했다.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장씨는 보증금 환급기에서 일회용 교통카드를 한 번 사용한 것으로 인식되도록 카드칩에 내장된 프로그램을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통카드가 사용된 것처럼 인식돼야 보증금을 환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정된 프로그램이 입력된 카드를 환급기에 넣어 한 장당 500원의 보증금을 빼돌린 것이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장씨 등이 어떻게 카드칩 프로그램을 수정했는지는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장모씨뿐 아니라 다른 지하철역에서도 횡령사건이 일어난 정황을 포착했다. 서울메트로도 자체 감사를 벌인 결과 이 같은 사실을 적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결과 서울 지하철 1~4호선 120개 역 중 80여개 역에서 이 같은 횡령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횡령금액은 6억~7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소속인 서울 지하철노조의 일부 간부 도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다.

2009년 도입된 일회용 교통카드의 미회수율은 2.8%다. 매년 7613만장 중 210만장가량이 회수되지 않고 있다. 이를 보증금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10억원가량이다. 2009년 교통카드가 도입됐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총 50억원의 보증금이 쌓인 것으로 추정된다.

○역무원들의 조직적 비리

서울메트로는 특정 역무원들의 개인 비리일 뿐 조직적인 횡령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역무원 1명이 협력자 없이 보증금을 빼돌리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노조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노조 간부는 “한 역에서만 수십 명의 역무원들이 근무하는데다 곳곳에 폐쇄회로TV(CCTV)가 설치돼 있다”며 “다른 역무원들이 눈감아 주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개별 역의 대부분 역무원들이 특정 노조원들로 구성됐다는 점도 일부 은폐 가능성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복수노조로 구성된 서울메트로의 1노조는 민주노총 소속이고, 2노조는 국민노총 소속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다른 역무원들이 연루된 정황도 포착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지하철노조 역무본부는 지난 20일 성명서를 내고 “보증금 환급기 부정과 관련해 서울메트로가 현장에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노총과 국민노총을 막론하고 서울 지하철 노조원들은 조합원 게시판을 통해 조속한 진상 규명을 요청하고 있다.

강경민/김태호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