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연비 논란을 자초한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26일 연비 검증 업무를 국토교통부로 일원화하면서 “연비 관리 수준을 동네 축구에서 아트 사커로 발전시켰다”고 자랑했지만 자동차업계는 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국차 연비에 불신을 초래해 해당 자동차 제조사의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이유에서다.

◆국가마다 천차만별인 연비

차량 연비는 나라마다 측정 방식이 달라 같은 차량이라도 국가별 복합연비는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현대 싼타페 2.2 디젤의 4륜구동 모델 복합연비는 한국에서 L당 13.8㎞다. 그러나 유럽 기준으로 측정하면 연비는 17.7㎞로 올라간다. 현대 i30 1.6 가솔린 모델도 한국에서는 연비가 13.5㎞에 그치지만 유럽에선 17.7㎞로 상승한다. 유럽으로 수출하는 한국산 차량의 연비는 국내에서보다 30% 이상 높게 신고되는 게 일반적이다.

수입차도 마찬가지다. BMW 대표 모델인 320d의 연비는 한국에서 18.5㎞인데 독일에선 21.7㎞다. 한국에서 16.9㎞인 520d 연비도 유럽으로 가면 20.4㎞로 높아진다. 독일뿐 아니라 일본도 한국보다 연비에 후한 편이다. 도요타 프리우스의 연비는 한국 기준으로 21㎞지만 일본에서는 30.4㎞ 이상이다. 도요타 캠리 하이브리드의 연비도 한국(16.4㎞/L)보다 일본(23.4㎞/L)에서 더 높게 나온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는 “일본과 독일의 도로 상황이 한국보다 낫고 교통 신호체계도 효율적이어서 같은 차종이라도 연비가 더 높게 나오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게 자동차업계의 설명이다. 한국보다 도로 상황이 열악한 중국에서도 연비가 높아지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현대 엑센트 1.6 가솔린 모델의 연비는 한국 기준으로 14.0㎞인데 중국에서는 15.2㎞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차와 정부에 대한 불신만 키워

국토부는 이번에 현대 싼타페(DMR 2.0 2WD)와 코란도 스포츠(4WD AT6) 모델의 연비가 과장됐다고 판단했다. 복합연비보다 실제 연비가 각각 6.3%, 7.1% 부풀려져 오차 허용 범위(5%)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반면 유럽과 중국으로 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유럽과 중국에선 오차 허용 범위를 8%로 인정하고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일본에서는 사후 인증 제도나 기준 자체가 없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부처 간 밥그릇 싸움을 해가면서 ‘뻥 연비’ 논란을 키웠다.

수입차 업체들도 일관성 없는 한국 정부의 정책에 대해 곤혹스러워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폭스바겐과 아우디, BMW 미니, 크라이슬러 4개 브랜드의 1개씩 모델에 연비 부적합 판정을 내리고 과태료를 부과했지만 해당 업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크라이슬러코리아는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산업부에서 지정한 시험 기관을 통해 2013년식 지프 그랜드 체로키 모델의 복합연비를 신고했는데 추후 실험으로 부적합 판정을 내린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뻥 연비’ 논란에 휩싸인 BMW와 폭스바겐도 “일단 과태료는 내겠지만 재조사를 요청해 반드시 잘못된 조치를 바로 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 수입차 업체 최고경영자는 “연비 부적합 판정을 독일 본사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매우 난처하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부처 간 이기주의 때문에 한국 연비 제도의 허점을 자인한 상황이 됐다”며 “결국 한국산 자동차와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만 깎아내려 국제적 망신만 당했다”고 날을 세웠다. 글로벌 연비 표준이 없는 상황에서 국토부가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혼란을 야기했다는 지적이다.

정인설/최진석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