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 리포트] 유럽 첫 위안화 결제거래소 · 이슬람 채권 발행…런던 '더 시티', 월가에 뺏긴 금융허브 1위 찾기 나섰다
지난 17일 런던 다우닝가 총리 관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리커창 중국 총리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나란히 걸어 나왔다. 두 사람은 기다리고 있던 언론에 “조금 전 중국 위안화 청산결제거래소를 설치하기로 양국이 합의했다”고 선언했다. 리 총리가 들고 온 140억파운드(약 24조원) 규모의 26개 경제협력 방안 중 영국이 가장 기다렸던 ‘선물’이었다.

그로부터 약 1주일 뒤인 25일 영국 재무부는 서구 국가 중 처음으로 이슬람 채권 수쿠크를 발행했다고 발표했다. 캐머런 총리가 지난해 10월 “글로벌 금융허브로서 런던의 위상을 드높이겠다”며 수쿠크 발행 추진을 결정한 뒤 불과 8개월 만이다.

영국이 미국 뉴욕에 내준 세계 금융패권 1인자 자리를 되찾기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이를 위해 미국에 가장 위협적인 중국과 이슬람을 파트너로 끌어들였다. 명실상부한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과 막대한 이슬람 자금의 영향력을 등에 업고 금융허브 패권을 되찾겠다는 전략이다.

월스트리트에 금융패권 빼앗긴 런던

지난 3월18일 영국의 일간 인디펜던트는 ‘빅 애플(Big Apple)’이 ‘더 시티(The City)’ 자리를 넘겨받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가 100년 넘게 전 세계 금융패권을 장악해온 런던 금융가를 밀어내고 글로벌 금융센터 경쟁력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내용이었다.

영국계 컨설팅 그룹 ‘Z/Yen’이 세계 83개 주요 도시의 국제 금융경쟁력을 측정해 발표한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평가에서 처음으로 뉴욕이 런던을 제친 것. 조사 결과 런던은 투자금융, 은행, 보험 등 핵심 금융산업에서 1위 자리를 내줬으며, 금융인프라 평가도 인적자원, 사업환경, 기반여건 등에서 밀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영국 내 2위 금융 중심지인 에든버러는 2007년 전 세계 15위에서 올해 64위로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런던이 세계의 금리와 금 시세를 결정하면서 100년 넘게 지켜온 글로벌 금융패권을 유지해온 위상이 허물어지기 직전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영국 언론들은 런던이 뉴욕뿐 아니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벨기에 브뤼셀, 룩셈부르크 등과도 힘겨운 경쟁을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런던이 추락한 원인으로 각종 금융비리와 스캔들, 영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꼽았다. 2012년부터 연이어 터진 바클레이즈 은행의 리보(Libor·런던은행 간 거래금리) 조작과 HSBC의 마약자금 돈세탁,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의 이란 불법 거래, 금·은 가격조작설 등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위안화·이슬람 금융으로 패권회복 노려

영국 정부가 택한 돌파구는 위안화와 이슬람 자본이라는 블루오션이었다. 위안화 결제거래소를 통해 유럽 기업이 중국과 무역할 때 위안화로 직접 결제가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첫 번째 카드였다. 유럽연합(EU)이 중국의 가장 큰 교역 상대국이라는 점도 감안했다. 위안화를 직거래하는 공식 금융창구를 런던이 맡게 될 경우 엄청난 부가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이나 홍콩, 마카오 등 중화경제권을 제외한 지역에 설립되는 세계 첫 위안화 청산결제거래소라는 상징성도 갖게 된다.

중국도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최적의 파트너를 얻게 됐다. 유럽 첫 거래소 설립을 위해 물밑에서 구애작전을 벌여온 프랑크푸르트, 파리, 룩셈부르크를 제치고 런던을 낙점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미 위안화는 국제 외환시장에서 달러, 유로, 파운드, 엔화 등에 이어 일곱 번째로 가장 많이 거래되고 있다.

영국의 두 번째 카드는 이슬람 자본 유치다. 이를 본격화하기 위한 첫 행보가 이슬람 채권(수쿠크) 발행이다. 지난 25일 첫 수쿠크 발행을 통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수쿠크는 이자 지급을 금지하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이자 대신 배당금이나 부동산 임대료 등의 형태로 수익을 돌려주는 채권. 이날 수쿠크 입찰에는 당초 조달 목표액 2억파운드의 10배가 넘는 23억파운드의 투자금이 몰리면서 런던의 ‘흥행 능력’을 입증했다. 5년 만기 수쿠크의 발행금리도 영국 국채 5년물 수준에서 결정됐다.

뉴욕 월가와의 정면 승부는 지금부터

전문가들은 런던과 뉴욕 간 세계 금융패권을 둘러싼 본격적인 전쟁은 이제부터라는 시각이다.

최근 런던증권거래소(LSE)가 27억달러를 들여 미국 투자자문사인 프랭크 러셀을 인수한 것이 단적인 예다. 러셀은 미국 중소형주의 흐름을 나타내는 러셀 2000지수 등을 통해 S&P 다우존스, MSCI지수 등과 경쟁하고 있다. 이번 인수로 자체 지수를 확보한 LSE가 인덱스와 상장지수펀드 등에 시장을 확대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며 선물이나 옵션 등 파생상품 시장에서도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사비에르 롤레 LSE 최고경영자(CEO)도 “미국 시장을 비롯한 글로벌 사업 확장을 강화해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수는 뉴욕 월가가 미국이라는 거대 경제권을 든든한 후원군으로 둔 반면 영국은 EU 회원국과의 갈등으로 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것.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는 영국이 EU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을 포기한다면 유럽 금융 수도로서의 모든 지위를 잃게 될 것이라며 최근 윈 비쇼프 전 로이드뱅킹그룹 CEO가 경고했다고 전했다.

■ 더 시티

The City. 정식 명칭은 ‘더 시티 오브 런던(The City of London)’. 구체적으로 영국 중앙은행을 비롯해 전 세계 주요 금융회사가 몰려 있는 런던 특별행정구역을 뜻하지만 런던 금융계를 통칭하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면적은 여의도와 비슷하지만 세계 주요 금융회사와 로펌, 회계법인, 컨설팅회사가 입주한 금융중심지다.
[글로벌 금융 리포트] 유럽 첫 위안화 결제거래소 · 이슬람 채권 발행…런던 '더 시티', 월가에 뺏긴 금융허브 1위 찾기 나섰다
이심기/강영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