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특허분야 최고 권위자인 랜들 레이더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CAFC) 법원장이 변호사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문제돼 사임했다.

30일 CAFC에 따르면 이날 레이더 법원장이 사적으로 친한 변호사에게 부적절한 이메일을 보냈다가 재판의 공정성 문제가 제기돼 법원장에서 물러났다. CAFC는 미국에서 벌어지는 특허소송의 항소 사건을 다루는 특별항소법원이다. 삼성과 애플이 미국에서 벌이고 있는 특허소송도 이곳에서 전담한다.

레이더 법원장은 이 특허 변호사에게 “특허 판사들이 당신의 소송 실력을 칭찬했고 나는 당신의 친구인 것이 자랑스럽다” “다른 사람에게 이 메일을 보여줘도 괜찮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로 인해 레이더 법원장과 해당 변호사가 특별한 관계로 소문났다. 결국 레이더 법원장은 CAFC 홈페이지에 공개 사과문을 올렸다. 그는 “청렴결백함이 반드시 유지돼야 하는 사법 절차의 선을 넘는 행동을 했다”며 “법원에선 공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조차 피하는 것이 맞다”고 사과하며 사임했다.

레이더 법원장의 사임이 결코 ‘강 건너 불’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부터 변호사 검사 등 경력 법조인만으로 신규 판사를 임용하는 국내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국 판검사와 변호사 중에는 과거 한솥밥을 먹은 ‘절친’들이 적지 않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법조일원화가 본격 시행됨에 따라 3년 이상 법조경력자에 한해 신규 법관 임용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법원과 변호사 업계 간 유착관계가 더욱 심화될 공산이 크다. 예컨대 법무법인(로펌) 출신 판사가 친정 편을 드는 ‘역(逆)전관예우’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로펌에서 특정 기업의 자문을 맡은 변호사나 대기업 법무팀 등에 몸담았던 변호사가 판사로 임용됐을 경우 재판의 공정성 여부가 끊임없이 논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 부회장도 “판검사 출신 변호사의 전관예우가 여전한 상황에서 법조일원화로 인해 ‘역전관예우’가 발생해 재판의 공정성이 침해받을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우려했다.

법관윤리강령 제5조 3항은 ‘법관은 재판에 영향을 미치거나 공정성을 의심받을 염려가 있는 경우에는 법률적 조언을 하거나 변호사 등 법조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강령 위반에 대한 제재는 그동안 유명무실했다.

배석준 기자 eul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