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실크로드에 닦은 强國의 길
꾀죄죄하고 우스운 외모, 찢어진 옷과 해진 신발에 어리숙한 말투로 바보라 불렸던 사내가 공주를 만나 당대 제일의 장군으로 변신했다. 우리가 익히 듣던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얘기다.

그런데 이 바보라 불렸던 사내가 진짜 바보가 아닌 이역만리 너머의 왕족이라는 설이 있다. 온달은 당시 강국(康國)이라 불리던 소그디아의 왕족 출신이 고구려 여인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로, 바보라 불린 것은 이국적인 외모와 어눌한 우리말 때문이란 주장이다.

근거는 이렇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지역에 자리잡은 강국은 13세기 몽골제국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다. 사내아이가 5세가 되면 문자를 익히고 장사를 배울 정도로 타고난 장사꾼이었던 강국인들은 실크로드 개척의 선봉자로, 고구려를 방문한 상인 중 하나가 고구려 여인을 만나 온달을 낳았다는 것이다.

삼국시대 3국과 강국 간의 원활한 교류도 온달의 강국인 설에 힘을 싣는다. 우즈베키스탄 유적지 아프라시압 궁전터 궁전벽화에 그려진 조우관을 쓴 고구려 사신도나 신라시대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유리잔은 우리 조상들이 오래전부터 강국과 교류했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전래동화 흥부·놀부전, 장화홍련전과 비슷한 민화도 현재 우즈베키스탄에 전해온다. 언어적 유사성도 커 문법이나 어순이 우리말과 비슷하다고 한다.

21세기판 ‘도넛경제’라 불릴 정도로 한국 경제가 어려운 현실에 괜스레 바보 온달의 고향 얘기를 꺼낸 이유는 한때 실크로드의 심장이라 불리던 강국,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에서 새로운 성장의 길을 찾을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다. 세계경제 저성장 속에서도 우즈베키스탄은 풍부한 천연자원과 지리적 이점을 내세워 지난 5년간 연평균 8%에 달하는 경제성장률을 구가하고 있다. 세계 열강도 다시 떠오른 강국의 힘에 주목하며, 신실크로드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 세계 육지 면적의 36%, 세계 인구의 71%를 차지하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즈베키스탄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도 지난해 10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내세우고 실크로드 전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여기에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과 경제사절단의 중앙아시아 순방으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이번 순방에서 박 대통령과 경제사절단은 막대한 경제적 성과를 이뤄내며 한국 경제가 구가할 강국(强國)의 길을 닦아 놓았다. 박 대통령은 기존 우즈베크를 포함한 중앙아시아 3국에 241억달러 규모의 프로젝트에 대한 정부 협력을 약속받았고, 카자흐와 투르크멘에 318억달러에 달하는 신규 프로젝트의 진출 기반을 구축했다.

경제사절단도 현지에서 대한상의가 주최한 ‘한-우즈베크 비즈니스 포럼’을 통해 섬유와 신재생에너지, IT분야 등 총 11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기존 자원 중심 교류에서 태양광, 정보통신기술(ICT), 보건의료 등으로 경제협력 분야를 다양화했다. 나아가 우즈베크 현지에서 열린 1 대 1 수출상담회에서는 한국기업 18개사, 우즈베크기업 100여개사가 참여해 6800만달러 규모의 상담을 진행, 이 중 3400만달러의 계약을 추진하며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불을 지폈다.

그동안 우리는 역사적으로 실크로드의 변방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이번 순방을 계기로 새롭게 열리는 실크로드의 주역으로 나설 수 있게 됐다. 1400여년 전 온달은 머나먼 고구려 땅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이제는 우리 차례다. 침체된 소비로 부진한 내수, 환율하락으로 인한 수출 부진에 빠진 한국 경제가 오랜 친구를 우군으로 삼아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고, 다시 펼쳐진 강국의 길 위에 번영의 꽃을 피우길 바란다.

이동근 <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