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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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한국동서발전의 충남 당진화력발전소. 장주옥 동서발전 사장이 연초 업무보고를 받으러 방문하자 사업장은 분주해졌다. 사업소장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임원들만 참석시켜 작은 회의실에서 업무보고를 할 작정이었다. 장 사장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업무보고는 대강당에서 진행할 테니 모든 직원을 다 모아달라”고 말했다. 예고에 없던 지시여서 사업소장은 당황했다. 장 사장의 다음 말이 더 놀라웠다.

“사업소장은 저 말고 직원들에게 연초 업무보고를 하세요.” 이날 사업소장은 ‘사장 보고용’으로 준비했던 올 한 해 주요 업무 과제와 전략 내용을 직원들에게 설명했다. 보고가 끝난 뒤엔 사원들과 토론도 했다. 상명하복식의 경직적인 조직문화가 강한 공기업에서는 보기 드문 업무보고 형식이었다.

◆밤 근무 자처하며 직원 애로 해소

장 사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직원들과의 스킨십과 소통이다. 그것도 ‘올빼미’ 식이다. 화력발전소 직원들은 하루 3교대로 근무하는 데 밤 근무자는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일한다. 그는 2012년 11월 취임한 이후 7차례에 걸쳐 지방사업소를 방문, 밤 근무를 자청했다. 전체 직원의 30%에 이르는 발전소 엔지니어들의 애로사항을 들어보자는 취지에서였다.

장 사장이 당진, 여수, 울산화력발전소 등 전 사업소 현장을 찾아 엔지니어들과 함께 밤을 새운 뒤 퇴근하자 반응은 뜨거웠다. 사장이 등이나 두드려주고 갈 줄 알았는데 밤을 꼬박 새우더라는 것. 격려 차원의 일회성 방문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직원들이 건의한 애로를 메모지에 꼼꼼히 적어 해결해 주려고 노력한다.

“현장 밤 근무를 갈 때마다 가장 많이 듣는 건의사항은 너무 잦은 순환보직을 막아달라는 거였습니다. 순환보직은 조직 관리엔 도움이 되지만 실무직은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순환보직만 하도록 시정했어요.”

틈만 나면 지방사업소를 방문하다 보니 지난해 장 사장의 차량 유류비는 월평균 185만원에 달했다. 에너지 공기업과 준정부 기관장 중 가장 많았다.

정부의 공기업 본사 지방이전 방침에 따라 동서발전은 지난달 본사를 울산으로 옮겼다. 장 사장의 첫 작품은 직원들의 업무 생산성 향상을 겨냥한 ‘스마트 오피스’ 도입. 직원 개인별 고정좌석을 없애고 업무가 비슷하거나, 같은 과제를 수행하는 직원들이 언제 어디서나 같이 앉아 협업할 수 있는 사무실을 만들었다. 사무실 내 칸막이를 모두 제거하고 별도로 두던 팀장 자리도 없앴다.

“동서발전은 지난해 5조4300억원 매출을 올린 공기업입니다. 대형 공기업의 제1 과제는 국가에서 주는 공익적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겁니다. 임무를 달성하려면 임직원 모두가 한 방향으로 가야 하죠. 가려는 방향이 어디고, 왜 그쪽으로 가려고 하는지 직원들도 잘 알아야 합니다. 아주 소소한 디테일까지 공유해야 조직이 성과를 내기 수월해집니다.”

◆옳다고 판단되면 밀어붙인다

장 사장과 함께 일해 본 직원들은 그의 장점을 주저 없이 특유의 결단력이라고 꼽는다. 옳다고 판단되면 주변에서 말려도 밀어붙여 성과를 이루는 스타일이다.

2004년 동서발전 연료구매 팀장으로 근무하던 당시 그는 발전용 유연탄 수송계약을 국제입찰에 부쳤다. 동서발전의 18년 장기수송권 첫 국제입찰에서 일본 1위 선사인 NYK가 최종 낙찰받았다. 이 전까지는 국내 선사들이 사실상 돌아가면서 수송 일을 맡았다.

국내 선주협회에서는 ‘외화 유출’이라며 국제입찰 반대 움직임을 보였다. 항만 노조원 30여명이 회사로 찾아와 그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물류비가 날로 증가해 국제경쟁 입찰로 물류비를 낮춰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국내 업체 간 담합 가능성이 배제되니까 더 투명해지는 것이었습니다. 17만t급 선박을 평균 14만5000t급인 국내선보다 더 싼 가격에 계약했으니 결과적으로는 옳은 결정이었죠.”

2002년 동서발전이 국내 발전사 중 처음으로 단순입찰 방식이 아닌 인터넷 역경매 방식으로 발전연료인 유연탄을 구매한 것도 장 사장의 아이디어였다. 인터넷 역경매는 구매자가 수용 가능한 최고가격을 제시하면 입찰 참가자들이 서로 입찰가격 제시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횟수에 관계 없이 최저가를 경쟁적으로 수정 제시해 입찰하는 방식이다.

장 사장은 당시 중국산 유연탄 공급 물량이 과잉이어서 인터넷 역경매 방식을 도입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도입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연료구매 팀장이던 그는 담당 임원과 사장을 찾아가 설득하고 또 설득해서 새 입찰 방식을 채택했다.

“기존 단순입찰보다 조달 기간을 약 한 달에서 1주일 정도로 단축하고 한 번 조달할 때마다 중국탄의 경우 60만달러, 인도네시아탄은 10만달러 정도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죠. 지금은 연료시장 상황이 변해 역경매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당시엔 의미있는 시도였습니다.”

◆“공부는 나의 힘”…직원교육 관심

장 사장의 경영철학 중 하나는 ‘양현용재(養賢用材)’다. 좋은 인재를 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교육시켜야 한다는 지론이다. 이는 그의 유년시절과 무관하지 않다.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던 그는 모나미볼펜 제조공장에서 일하면서 야간 고등학교를 다녔다. 월급으로 수업료를 내고 남는 돈은 가계에 보탰다. 공장에서 오래 일한 탓에 귓속에서 소음이 들리는 이명을 앓기도 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럭키화학(현 LG그룹의 전신)에서 잠시 일하다가 군 복무를 마친 뒤에야 건국대에 입학했다.

“그때만 해도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죠. 공부도 하고 돈도 벌 수 있으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식지 않은 향학열로 그는 핀란드 헬싱키대 경제대학원(2002년), 미국 인디애나주립대 법학석사 과정(2006년)도 거쳤다. 그런 만큼 사내 직원들에 대한 교육 열정이 남다르다. 장 사장은 “공부하는 즐거움을 직원에게도 알려주고 싶다”며 지난 2월 사내대학 프로그램을 만들어 첫 신입생을 맞았다. 울산화력본부와 당진화력본부에 인접한 울산대와 신성대에 동서발전 직원만을 위한 전기에너지공학과를 개설해 주2회 온·오프라인으로 교육받도록 했다.

장주옥 사장 프로필

△충북 음성 출생(1954년) △건국대 법학과 졸업(1984년) △한국전력공사 입사(1984년) △한국동서발전 연료팀장(2001년) △한국동서발전 기획처장(2007년) △한국전력 해외사업본부 해외자원개발처장(2009년) △한국전력 해외사업본부장(2011년) △한국동서발전 사장(2012년 11월~)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