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기업문화, CEO가 바꿔라
중견기업 A사는 2년 전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컨설팅회사 자문을 받았다. 경영진이 기업문화를 바꿔보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몇 달 후 보고서가 나왔다. 권고대로 대리 과장 차장 등 직제를 없애고, 소통활성화와 회의문화 개선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했다. 며칠 전 만난 A사 간부에게 그 효과를 물었다. 그는 “답답합니다. 직원들은 안 변하고, 사장님은 왜 창의적 아이디어가 안 나오냐고 닦달하네요”라고 답했다.

A사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다. 몇 년 새 기업문화의 중요성을 깨달은 수많은 기업들이 뭔가 바꿔보겠다고 나섰다. 대기업과 벤처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중견기업, 중소 제조업체까지 기업문화를 바꾸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징검다리 연휴는 무조건 쉬게 해주고, 직원들을 위한 파티를 열고, 사무실을 캠퍼스처럼 꾸미는 회사도 있다. 경영대학원(MBA)을 보내주고, 성과보상 제도를 확대한 곳도 많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기업의 경영자들은 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전문가들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DNA를 바꾸는 것이 쉬운가

톰 피터스는 문화를 바꾸는 것을 DNA를 바꾸는 것에 비유했을 정도다. 컨설턴트들도 “기업 전략을 바꾸는 것은 언제나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하지만 조직문화를 바꾸는 것보다는 쉽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문화를 바꿔 성공한 회사들은 손에 꼽히고, 사례연구의 대상이 된다.

인텔의 부활을 이끈 앤디 그로브가 그런 경우다. 인텔 창업공신 중 한 명인 그는 1984년 어느 날 당시 최고경영자(CEO) 고든 무어를 찾아가 “우리가 쫓겨나고 새 경영진이 오면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는다. 무어는 “우리 흔적을 지우고 다 바꾸겠지”라고 답했다. 그로브는 “우리가 그렇게 하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이들은 짐을 싸, 회사 출입문을 나갔다 다시 들어오는 이벤트를 했다.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로브는 CEO에 오른 후 운전기사를 두지 않고, 간부직원의 특혜를 없애는 등 평등한 인텔의 문화를 만들었다. 그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그는 “지위를 가진 사람과 지식을 가진 사람이 동등하게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회사의 생존이 달린 문제”라고 설명했다.

절박함과 CEO변화가 그 시작

국내에서는 이건희 삼성 회장을 예로 들 수 있다. 1993년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그는 “삼성의 미래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나부터 변하겠다”며 개혁의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양에서 질로 경영의 방향을 틀고, 직원들의 임금을 파격적으로 올리는 등 삼성을 근본적으로 바꿔갔다.

그로브와 이건희 개혁의 키워드는 ‘생존의 절박함과 나로부터의 변화’였다. 헨리 민츠버그 캐나다 맥길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권력을 거울에 비췄을 때 거꾸로 선 이미지가 곧 문화”라고 했다. 권력자가 기업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다시 A사 얘기다. A사 간부에게 기업문화 캠페인을 하는 동안 회장님, 사장님은 어떤 역할을 했냐고 물었다. 그는 한참 동안 답을 못했다. 기업문화를 바꾸고자 하는 경영자라면 어느 컨설턴트가 했다는 이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기업문화는 기업인의 페르소나(persona) 그 자체다.”

김용준 중소기업부 차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