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계족산 황톳길
2004년 대전의 한 소주회사를 인수한 나는 가족들과 대전으로 이사해 정착했다. 마라톤을 즐겨 인근의 계족산을 자주 찾았다. 2006년 4월, 오랜만에 전국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을 불러 계족산 나들이에 나섰다. 그런데 친구 중 두 명이 하이힐을 신고 나타났다.

나는 궁리 끝에 나와 친구 한 명이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어주고 뜻하지 않게 맨발로 돌밭 길을 걸었다. 신발을 벗어주는 친절을 베푼 대가로 맨발의 아픔을 맛봤다. 14㎞가 넘는 돌길을 힘들게 걷고 하산한 다음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깜짝 놀랐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꿀잠’을 잤고, 몸이 무척 개운했다. 몸속에 쌓여 있는 스트레스가 싹 풀리는 것 같았다. 신기했다. 맨발로 걸었더니 발바닥에 지압 효과가 제대로 난 것이다. 나 혼자만 알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계족산에 흙을 깔 궁리를 했다. 이것이 계족산 황톳길의 시작이었다.

강연을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자주 물어보는 것 중 하나가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창조적인 생각을 하는 비결이다. 내가 희대의 천재라서 그런 것일까?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뭘 창조해볼까’ 골몰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강조하는 창조의 비결은 ‘배려’다.

배려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도와주는 것이다. 배려는 결코 크고 대단한 일이 아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벗어준 신발이 오히려 아이디어라는 선물로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배려가 창조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새로운 것을 생각해냈다고 해서 창조가 아니다.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지지를 받아야 진짜 창조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얼마 후 사람들은 새로운 것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려면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나아가 그것을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그것이 배려다.

나와 회사의 상징물이 된 대전의 계족산 황톳길은 2006년 4월의 그 우연한 사건이 낳은 결과물이다. 타인의 불편함을 보고도 혀나 끌끌 차고 말았다면 발바닥 지압의 신기한 경험도, 황톳길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배려하는 마음이 있는 한 그 날의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굳이 황톳길이 아니었더라도 뭔가 멋진 것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조웅래 < 맥키스회장 wrcho@themackis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