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1912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현직 대통령인 공화당의 윌리엄 태프트, 공화당에서 탈당해 출마한 전임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민주당 우드로 윌슨의 3파전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세 후보 모두 소득세 도입을 주장했다는 점이다. 공화당의 분열로 어부지리로 당선된 윌슨은 사상 최초로 현대적 의미의 소득세를 도입한 대통령이 됐다. 3000달러 이상 소득에는 1%, 2만~50만달러에는 2~7%의 세금을 부과하는 누진적인 소득세였다.

송원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
송원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
1913년 미국에서 누진적인 소득세를 도입한 것은 상당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소득세 도입으로 정부가 개인의 재산권과 기업 활동에 적극적으로 간섭할 수 있게 됐고, 이에 따라 명실상부한 큰 정부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대통령 후보가 모두 소득세 도입을 주장했다는 것은 19세기 후반 독점금지법 도입에서 시작된 정부 개입의 확대가 20세기 들어 하나의 시대적 흐름이 됐음을 보여준다. 또한 소득세 도입은 정부 역할의 확대가 재정적 기반까지 갖게 됐음을 의미한다. 연방준비법 제정으로 중앙은행(Fed)이 설립된 해도 역시 1913년이다.

이전에도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는 종종 있었다. 고대에도 소득세와 비슷한 세제의 기록이 있으나 근대 들어 소득세가 등장한 것은 주로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영국은 프랑스혁명 발발과 더불어 혁명의 파급을 방지하기 위한 반혁명 전쟁 수행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1799년 당시 총리이자 재무장관이던 윌리엄 피트가 소득세를 도입했다. 피트가 도입한 소득세 역시 누진적이었다. 그러나 피트의 소득세는 1799년부터 1802년까지 부과된 뒤 전쟁의 위험이 사라지자 폐지됐다.

이후 영국에선 나폴레옹전쟁으로 소득세가 다시 도입됐다가 워털루전투 다음해인 1816년 폐지되는 등 전쟁과 평화라는 시기적 특성에 따라 도입과 폐지를 반복했다. 1842년 늘어나는 재정적자 해소를 위해 다시 도입된 소득세도 항구적이 아닌 일시적인 목적의 세제였고, 이와 같은 누진적 소득세제의 유지에 대한 논쟁도 치열했다. 그러나 당시 발발한 크림전쟁의 비용 충당을 위해 소득세제는 유지됐고, 1860년대에 이르러 누진적 소득세제는 영국 재정시스템의 한 요소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미국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전쟁비용 마련을 목적으로 소득세제가 일시적으로 도입됐다. 1861년 남북전쟁 비용 충당을 위해 도입된 소득세는 급여뿐만 아니라 이자와 배당에도 부과됐다. 그러나 거둬들인 세금은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에 부족해 소득세의 누진성과 세율이 높아지는 결과가 초래됐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도 전쟁으로 인한 연방정부의 막대한 부채 때문에 소득세제는 유지됐고 1872년에야 폐지됐다.

[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전쟁 비용 대던 소득세, 거대 정부·복지병 낳았다
남북전쟁 이후에는 소득세 도입 이전 재정의 기반이 됐던 관세수입이 증가했음에도 소득세 재도입 논의가 지속됐다. 1874년부터 1894년까지 20년 동안 소득세 도입을 위한 법안이 68개 제출됐으나 소득세는 1895년 대법원에서 위헌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민주당이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연방정부의 권한을 최소화하는 기존의 제퍼슨식 전통에서 벗어나 소득세 도입을 위한 헌법 개정에 찬동하면서 상황은 변했다. 1908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득세와 상속세 도입을 추인했고 소득세 도입을 위한 수정헌법 16조의 의회와 개별 주 승인이 1913년 2월13일 완료됐다.

1913년 소득세 도입 당시의 최고 세율은 7%에 불과했으나 이후 1916년 15%, 1917년 67%, 1918년 77%까지 급격히 올랐다. 1920년대 호황기에 24%까지 떨어졌던 세율은 대공황 이후 뉴딜과 같은 국가주의의 등장으로 다시 급등하기 시작해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는 94%에 이르게 된다. 미국의 소득세 최고 세율은 1980년대 레이건 정부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50% 이상의 고율을 유지했다. 1%에서 시작된 소득세 최저 세율도 지속적으로 올라 현재는 10%에 달한다.

미국의 소득세 도입과 변천 과정을 보면 전쟁비용 충당이라는 일시적 필요성에서 시작돼 재정수입의 주요 수단으로 항구화됐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세제의 누진성도 지속적으로 높아져 소득세제가 소득 재분배의 목적으로 활용됐음을 보여준다.

소득세제의 도입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누진적인 소득세제 도입으로 부유층의 소득과 재산을 국가가 빼앗을 수 있는 법적 근거와 더불어 국가가 소득을 재분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동시에 소득세제는 소득 재분배와는 무관하게 중산층과 근로계층이라는 광범위한 계층을 납세자로 편입해 큰 정부, 국가개입주의의 물적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영국과 미국 이외의 국가도 대부분 누진적인 소득세제를 도입해 재정수입 기반으로 활용했다. 영·미를 포함한 선진국은 20세기에 높은 소득세 부과로 막대한 세수를 확보했으나 동시에 투자와 근로 의욕이 크게 저하돼 경제활동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 또한 막대한 소득세 수입은 정부개입 확대를 위한 각종 정부지출에 활용됐을 뿐만 아니라 많은 유럽 국가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광범위한 복지정책을 시행했다. 정부지출과 공공부문 확대는 경제의 비효율을 심화시켰고 광범위한 복지정책은 재정위기의 진원지가 됐다.

높은 세율을 특징으로 하는 서구 선진국의 누진적인 소득세제는 다양한 형태로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는 원인이 됐다. 레이건·대처 집권 이후 영·미를 중심으로 소득세를 포함한 전반적인 감세가 실행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감세의 긍정적 효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장기적으로 나타났다. 영국병의 극복, 미국 경제의 부활, 1980년대 이후 장기간에 걸친 세계 경제의 호황은 이를 증명해준다. 소득세가 넓은 세원의 역할을 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음에도 과도하게 누진적인 고율의 세제여서는 안 되는 이유다.

■ 누진적 소득세 대안은
낮은 세율의 비례적 소득세…경제 성장·계층 이동 촉진

소득세는 영국에서 처음 도입됐을 때부터 소득이 높을수록 세율이 더 높아지는 누진세제였다. 프랑스혁명 시기와 19세기 사회주의자들의 혁명운동 과정에서 소득재분배 수단으로 누진세제가 주장됐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매우 누진적인 소득세가 혁명의 초기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로부터 자본을 탈취하고 모든 생산 수단을 국유화하는 데 유용한 방안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사회주의자들은 소득재분배 방안으로 누진적인 소득세제를 주장했으나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은 누진세를 약한 형태의 강탈로 간주해 비판했다. 그래서 등장한 새로운 주장이 사회적으로 동등한 희생을 위해 지급 능력에 따라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소위 사회개혁가들의 주장이다. 19세기 사회개혁가들은 누진적 소득세의 목적이 소득재분배가 아닌 동등한 희생이며 이런 목적에 맞춰 세제 누진도도 과도하게 높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세기 소득세제의 도입과 더불어 한 세대 만에 소득세 최고세율은 90%를 웃돌게 된다. 이렇게 높은 세율은 사회적으로 동등한 희생을 위해 지급능력에 따라 세금이 부과된 것으로 볼 수도 없다. 소득 분포를 변화시키려는 목적 이외에는 최고세율이 소득의 대부분을 세금으로 정부가 가져가는 제도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결국 20세기 내내 서구 선진국에서 시행됐던 높은 누진도를 지닌 소득세제는 소득재분배를 목적으로 했다고 볼 수 있다.

과도하게 높은 누진적인 소득세제는 시장 진입자의 이윤과 소득을 세금으로 가져감으로써 자본 형성을 위축시키고 경쟁을 제약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누진적 소득세는 새로운 자본의 축적을 저해하고 신참자의 사업 확장, 큰 사업체로의 도약도 저해한다. 결국 누진적 소득세제는 기존 사업자의 기득권을 보호해줌으로써 경쟁을 제약하고 더 나아가 경제 성장을 제약한다.

누진적인 소득세제는 직업의 전환, 계층 간의 이동도 제약한다. 2004년 발표된 젠트리와 허바드의 논문 ‘누진적 소득세제가 직업이동에 미치는 효과’에 따르면 높은 세율과 누진도의 증가는 한 가정의 가장이 더 좋은 직장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낮춘다. 세율 인상과 누진도의 증가는 성공적인 직장 탐색의 이득을 세금으로 가져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코네사와 크뤼거의 2006년 논문에 따르면 후생, 소비 모든 측면에서 최적의 누진적 소득세제는 누진성이 없는 비례적 소득세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낮은 세율의 누진성이 없는 비례적 소득세를 채택하는 것이 계층 간 이동성을 높이고 국민 후생을 증대시키며 경쟁 심화를 통해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