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판' 세계유산 남한산성
지난달 29일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사진) 서문(우익문).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청나라 군에 항복하러 삼전도로 향할 때 나섰던 문이다. 지금은 고층 건물이 즐비한 서울 강남의 풍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으로 많은 사람이 찾는다.

그런데 서문 인근 공터와 벤치에선 삼삼오오 모여앉아 음주와 함께 고스톱을 치는 시민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공원에서는 노점 상행위를 할 수 없다’는 현수막이 부착된 탐방길 바로 옆에서 버젓이 막걸리와 음식을 파는 노점상들도 보였다. 하지만 이들을 단속해야 할 공무원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이 무질서 속에서 방치되고 있다. 성곽 곳곳은 훼손된 채 방치됐고, 산성 내부에선 음주와 흡연을 일삼는 일부 시민들의 행태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를 단속해야 할 관리 당국의 감시 소홀로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위상을 무색하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성 북문(전승문)과 동문(좌익문) 사이의 일부 성곽에선 성벽 덮개인 기와가 깨진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성곽 밑에 설치된 암문 천장엔 벽돌이 빠진 채 바닥에 떨어져 있어 탐방객들의 안전을 위협했다. 성벽을 지탱하는 받침돌이 빠져 있는 곳도 적지 않았다.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엔 벽돌이 떨어져 나가 자칫 인명피해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성곽 붕괴를 막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훼손된 성곽에 비닐 천막을 씌워놓은 곳도 눈에 띄었다.

뿐만 아니라 잔디밭과 공터에선 돗자리를 깔고 음주와 흡연을 하는 탐방객들도 많다.

국립공원은 음주와 흡연이 금지되지만 남한산성은 경기도가 지정한 도립공원이어서 이런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남한산성 성곽과 수어장대, 청량당, 행궁 등 일부 구간만 2012년부터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성곽 주변은 각종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다. 산성 둘레길엔 탐방객들이 버린 김밥 등 음식물 쓰레기가 수거되지 않은 채 잔뜩 쌓여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이날 만난 한 자원봉사자는 “방치된 쓰레기가 너무 많아 탐방객들이 자주 찾는 수어장대와 서문 근처에서만 수거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산성을 관리하는 관리사무소 측은 단속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전체 11㎞에 달하는 산성을 일일이 관리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면서 예전에 비해 단속을 강화했음에도 산성이 워낙 넓다 보니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며 “산성을 찾는 탐방객들의 시민의식이 높아지기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