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소리 예의
제천 가은산 등산을 갔다. 옥순대교에서 올라가서 상천리 백운동 휴게소로 내려오는 경로를 택했다. 이정표에 575m 높이의 산을 3㎞ 내려오는 데 2시간 걸린다고 써 있었다. 대롱대롱 매달려 가면서 내려와야 하는 난구간이 많아 2시간 반이 걸렸다. 내려오는 길에 이정표보다 시간이 더 걸리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 가파른 길 못지않게 더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소음이었다. 몇몇 여성 등산객이 무지막지하게 큰 목소리로 삼겹살, 오겹살 얘기를 주고받는데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걷기를 멈추고 멀리 떨어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라디오로 대중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가는 단체 등산객들과도 조우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결국은 내내 그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끼리 층간소음 문제로 살인까지 하는 세태, 나이 60세가 넘은 사람이 젊은이들과 다투다가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떡하나 하는 비겁함에 그냥 참고 지나갔다. 하지만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소리에 대한 예의는 사실 많이 좋아졌다. 전철 안에서 남에게 들리는 큰 목소리로 전화를 하는 사람도 사라졌다. 음악을 들을 때는 모두 이어폰을 사용한다. 음악회에서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는 촌스러움도 사라지고 있다. 연주 전 안내의 효과다. 연주가 끝난 후 1~2초간은 박수를 참아 달라는 요청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마찬가지로 등산로 입구에 ‘지나친 소음은 이웃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산에는 소음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온 사람들이 더 많으니 굳이 산에 와서도 음악을 들어야 한다면 이어폰을 사용해 달라’는 권고문을 게시하면 좋겠다. 혹시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 지적하는 사람의 입장을 좀 떳떳하게(?) 해 주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개인의 분별없는 소음보다 더 문제는 관광지와 지방자치단체 행사장에서의 소음이다. 보길도 세연정에 간 적이 있는데 그 큰 정원의 구석구석에 스피커를 많이도 숨겨 놓고 종일 어부사시사를 틀어대고 있었다. 꽃과 나무를 샅샅이 둘러보고 사진을 찍기 때문에 두 시간 이상 머물러야 하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고통스러웠다. 고산 선생도 좋아하시지 않을 것 같다. 완도군은 사람들이 세연정에서 평균 몇 분 정도 머무르는지 조사해서 한두 번 정도만 듣고 가게 해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박병원 < 은행연합회장 bahk0924@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