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우 팬택 대표. <자료 사진>
이준우 팬택 대표. <자료 사진>
[ 김민성 기자 ] 국내 3위 휴대전화 제조 업체 팬택이 1차 부도를 피할 수 있을까.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 끝자락에 선 팬택의 법정관리 돌입 여부가 8일 판가름난다.

8일은 팬택 채권금융기관협의회가 정한 워크아웃 최종 결정일이다. 이날 자정까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이동통신 3사가 팬택 채권 1800억 여원을 출자 전환하지 않을 경우 팬택은 1차 부도를 맞는다.

팬택의 실날같은 희망의 끈을 이통사가 쥐고 있다. 이통사가 거부할 경우 부도 발생 전 기업회생 과정인 워크아웃 절차는 종료된다. 기업 존속을 장담할 수 없는 사후 법정관리로 들어선다.

채권단은 지난 4일 이통사 동참을 조건부로 내걸고 팬택의 채무 상환을 8일까지 미뤘다. 이통사의 결정이 팬택 경영정상화 존폐를 겨정할 핵심이란 의미다. 이통사가 더 고민할 시간을 준 것.

업계는 팬택 회생 과정을 '팬택 사태'로 부르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유통권을 거머쥔 이통사와 제조사 간 오랜 '갑을' 갈등에다 불법 보조금 논란과 이통사 최장 영업정지 등 꼬일 대로 꼬인 국내 단말 유통 현실이 고스란히 투영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워크아웃을 주도해온 금융권 채권단과 '공'을 다시 떠안은 이통사 간 명분·실리 다툼도 시끄럽다.

'팬택 사태'를 둘러싼 업계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이통사가 팬택 출자 전환에 참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예상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이통업계 고위 관계자는 "이통사가 결국 출자전환에 참여할 것" 이라며 "다만 어떤 조건으로 참여할지를 놓고 (채권단과) 세부 협의하고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채권단이 4일간 이통사 결정을 유예해 준 것은 그만큼 이통사가 고심 끝에 참여하는 모양새를 만들기 위한 포석이란 해석이다.

또 이통사가 1800억 원 출자전환을 고심하는 이유가 "되돌려 받기 어려운 돈"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채권단은 팬택 정상화에 무상감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알고 있다" 며 "무상감자를 하면 1800억 원은 팬택에 대한 순수한 지원 성격의 자금이 돼 이통사가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상감자는 주식 보유자가 어떠한 보상도 받지 않고 결정된 감자 비율만큼 주식을 포기하는 행위다. 전체 주식수를 줄여 자본금을 낮춘 뒤 재무구조를 개선하면 차후 인수합병(M&A) 과정에 유리하다. 향후 채권단이 팬택을 어느 정도 정상궤도로 올려 놓은 뒤 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전략이다.

현재 팬택 부채는 9900억 원 규모로 자본잠식 상태다. 이번 팬택 워크아웃의 양대 골자는 금융권 3000억 원 · 이통사 1800억 원 출자전환과 함께 무상감자(10 대 1 비율)로 알려져 있다.
팬택 기업 소개 화면 캡처.
팬택 기업 소개 화면 캡처.
팬택 정상화의 핵심은 이통사가 팬택 지원에 참여하되 향후 무상감자에 어떤 조건을 요구했는지다. 이통사가 출자전환을 고민하는 금액은 SK텔레콤 약 1000억 원, KT와 LG유플러스는 400억 원 씩으로 알려졌다.

관련 업계에선 이들 이통사가 무상감자 때 이통사 출자전환 분의 보전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은행 등 금융 채권단 3000억 원에 대해서만 무상감자를 하고, 이통사 지분은 전체 혹은 일정 부분을 보전해 달라는 것.

또 다른 핵심 사안은 이통3사가 보유한 팬택 재고분 처리 방식. 업계가 추정하는 팬택 국내 재고분은 약 50만 대. 평균 단말 공급가격을 70만 원으로 잡으면 3500억 원 규모다. 팬택이 부도를 맞을 경우 팬택 제품 구매를 꺼리는 소비자가 늘어난다는 게 문제다.

이통사들은 자칫 막대한 재고분을 털어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통사들이 팬택 지원에 동참할 수 밖에 이유이자 또 다른 고민의 시작점이다.

출자전환으로 팬택이 부도를 면한다고 해도 재고분을 팔려면 단말기 가격을 인하해 소비자를 유인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다. 문제는 가격을 인하할 경우 제조사는 이통사에 재고보상금을 추가로 물어야한다. 스마트폰 가격을 20만 원씩 낮춘다고 하면 재고분 50만 대에 대한 재고보상금은 1000억 원에 달한다. 이통사가 제조사에 대한 1000억 원의 신규 채권을 또 짊어져야하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통사가 채권단에 재고보상금 권리를 분명히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며 "출자전환 문제뿐 아니라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추가 손실 계산으로 이통사들이 분주하다"고 말했다.

이통사들은 팬택 부도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지원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채권단이 4일간 유예로 이통사에 다시 결정권을 넘긴 것도 이런 명분 싸움의 우위에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팬택이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이통 3사는 불법보조금 문제로 역대 최장 기간 영업정지 철퇴를 맞았다. 팬택은 올초부터 수익성이 있는 해외 시장만 남긴 채, 국내 시장에 전념했다. 영업정지 기간 '베가 아이언2' 등 전략폰을 출시했지만 결국 심각한 적자를 봤다.

이통사 간 밥그릇 싸움 끝에 국내 스마트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팬택의 회생 '골든 타임'까지 날려버렸다는 비난이 쏟아질 수 있는 배경이다. 주무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도 팬택이 부도를 맞을 경우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 단말기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통 3사에 1800억 원이란 돈은 프미리엄 스마트폰 출시 때 2~3일 간 뿌리는 보조금 규모 밖에 안된다" 며 "돈보다 이통사가 비난 여론과 책임론을 벗을 수 있을지 계산하는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당사자인 팬택은 이통사 최종 결정과 관련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팬택의 고위 관계자는 "팬택과 협력업체 550여곳에서 일하는 직원이 7만여명" 이라며 "팬택이 부도를 맞을 경우 팬택만 바라보는 협력사 도산도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채권단 출자전환 자금은 대부분 이들 협력사로 흘러가게 될 것" 이라며 "팬택 뿐 아니라 7만여 직원과 그 가족들의 생존 차원에서 문제를 봐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한경닷컴 김민성 기자 mean@hankyung.com @mean_R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