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뮤지컬 ‘프리실라’의 제작과정을 소개하며 웃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뮤지컬 ‘프리실라’의 제작과정을 소개하며 웃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공연과 전시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문화경영인들. 그들은 탁월한 기획과 마케팅으로 문화예술가와 관객이 하나 되는 감동의 순간을 이끌어 낸다. ‘문화가 있는 나날들’을 만들어내는 주역이다. 한국경제신문은 공연 미술 출판 엔터테인먼트 등 각 문화예술 부문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경영인들의 활동을 생생히 소개하는 ‘문화경영 25시, CEO가 뛴다’ 시리즈를 주 1회 싣는다.

뮤지컬 ‘프리실라’의 프리뷰 첫 공연이 열린 지난 3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초청 인사들과 객석에 나란히 앉은 제작자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는 공연이 펼쳐진 2시간30분여 동안 긴장을 풀지 못한 채 무대를 지켜봤다. 무대에 등장한 실물 크기의 대형 버스가 마술처럼 변신하고, 공중에 디바들이 오르내릴 때마다 객석에선 탄성이 절로 나왔지만 설 대표의 가슴은 조마조마했다.

“첨단 기술로 가동되는 장치들이 혹시나 오작동해 사고가 나지 않을까, 배우들이 버벅거리거나 동선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불안 불안했죠. 관객들이 박수를 치고 웃고 즐길 때 저도 따라 웃지만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 갔죠. 다행히 큰 실수가 없었고 관객들 반응이 좋아 한숨 놓았습니다.”

주인공인 버나넷 역을 맡은 중견배우 조성하의 연기도 설 대표를 안심시켰다. “조성하는 ‘프리실라’로 뮤지컬에 데뷔하는데 공연 전날까지 너무 고민을 많이 하고 압박감을 느끼는 것 같았어요. ‘충분히 잘 하니 이제 마음껏 즐겨도 된다’고 문자메시지를 남겼는데 역시 베테랑 배우답게 무대에서 잘 해내더라고요.”

한국 뮤지컬의 산업화를 이끌어온 국내 대표적인 프로듀서인 설 대표는 ‘올여름 가장 바쁜 공연 제작자’로 꼽힐 듯하다. ‘프리실라’(8일~9월28일)를 비롯 ‘캣츠’(8월13일까지·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위키드’(10월5일까지·샤롯데씨어터) 등 그가 제작한 세 편의 뮤지컬이 동시에 무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보통 2년에 세 편 정도 제작하는 데 올여름에 2년치를 한꺼번에 하는 셈이죠. 두 작품이 겹친 적은 있었어도 세 작품까진 처음입니다. 그만큼 신경 쓰고 챙겨야 할 게 더 많아요. 가장 나중에 결정된 ‘프리실라’의 공연 시기가 대관 사정으로 여름에 잡힌 탓이죠.”

설 대표는 2009년 런던에서 ‘프리실라’를 처음 보고 국내에 들여오기로 마음먹었다. 이 작품은 ‘드래그 퀸’(여장 남자) 공연 댄서 세 명이 호주 사막 횡단 버스 여행을 함께하는 이야기에 1970~1980년대 인기 팝송 28곡을 입힌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음악과 쇼적인 요소가 뛰어나 뮤지컬 ‘맘마미아’ 이상으로 중년층 관객을 끌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하지만 예상보다 높은 비용이 걸림돌이었지요.”

설 대표는 2012년부터 이 작품의 오리지널 제작자인 게리 매퀸과 협상을 시작하고 사전 제작을 진행했다. 로열티 등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던 지난해 11월 “국내 제작을 포기하겠다”고 매퀸 측에 통보했다.

“제가 종종 구사하는 ‘벼랑 끝 전술’이죠. 통하면 보다 나은 조건으로 제작할 수 있고, 통하지 않으면 사전 진행비와 각종 위약금 등 수억원의 손실을 감수해야죠. 이번엔 다행히 통해서 올초에 ‘수정 제안’이 들어왔어요. 런던에서 매퀸과 와인을 마시면서 로열티를 1.5%포인트 낮추는 등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최종 계약을 맺었죠.”

‘캣츠’는 ‘오페라의 유령’과 함께 설앤컴퍼니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다. 저작권은 뮤지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세운 영국의 RUG가 갖고 있다. 설앤컴퍼니는 RUG와 제휴를 맺고 3년 주기로 투어나 라이선스 공연을 제작한다. “RUG의 아시아·태평양 투어 공연은 대부분 제가 주도합니다. 이번 ‘캣츠’ 투어도 2011년 일찌감치 한국 공연 일정부터 확정한 뒤 제작진 구성과 배우 캐스팅 조율에 들어갔지요.”

설 대표는 1년 중 절반 이상을 런던 시드니 뉴욕 등 해외에서 보낸다. 국내에 들여올 작품을 발굴, 협의하고 현지에 올려지는 공연에도 공동 투자·제작자로 참여한다. 올해도 시드니에서 공연 중인 ‘록키 호러 쇼’ ‘그리스’, 최근 런던에서 막이 오른 ‘나쁜 녀석들’ 등에 투자했다.

최근 두 달 동안엔 이탈리아 밀라노에 자주 다녀왔다. 내년 5~10월 열리는 ‘밀라노 세계 엑스포’ 기간에 현지에서 올릴 공연을 기획, 제작하기 위해서다. 설 대표는 “3500만여명의 관람객이 예상되는 세계적인 엑스포 행사에 참여하고 싶어 올초부터 ‘밀라노 프로젝트’를 기획했다”며 “지난달 현지법인을 세워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그는 “내년 7월쯤 공연할 예정으로 이달 말 구체적인 콘텐츠가 확정된다”며 “그동안 제작자로서 쌓아온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살려 경쟁력 있고 수준 높은 공연을 전 세계 관람객들에게 선보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