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125년전 월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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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미국에서 월스트리트저널을 정기 구독한다고 하면 학식이나 재산이 있는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그래서인지 이 신문을 보는 사람들은 아침에 현관 멀리 떨어진 곳에 배달된 신문을 느긋하게 집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가 월스트리트저널을 월지(紙)라고 줄여 부르는 것처럼 미국인들도 ‘저널’ 혹은 ‘WSJ’라고 줄여 부른다. 지식인 사회에선 친숙한 미디어다.
어제는 월지의 창간 125주년이었다. 월지는 이날 기념판을 내면서 125년 전 첫 판 신문 1면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창간 당시 월지는 4쪽짜리 석간신문이었다. 수년간 ‘고객에게 드리는 오후 편지’라는 프린트물을 찍어 주식중개인들에게 나눠주던 기자 3명(찰스 다우, 에드워드 존스, 찰스 버그스트레서)이 신문으로 창간하면서 전신서비스도 시작했다. 신문값은 부당 2센트였는데 현재 물가로는 51센트 정도다.
창간호 첫 페이지는 사진이나 도표 없이 흑백 텍스트로만 꾸며져 있다. 양옆에는 증권중개회사 등의 유료 광고도 실었다. 기사는 제목이나 편집을 고려하지 않은 정보지 형식으로 게재됐다. 눈에 띄는 것은 1면 톱기사 자리에 ‘주식가격 변화표’를 넣었다는 점이다. 6줄이 안 되는 짧은 기사지만 주식시장 흐름이 잘 요약돼 있다. 주가가 1885년에 강세가 시작돼 1887년 5월 정점을 찍고 다시 약세로 돌아섰다는 흐름을 기록하고 있다. 이 통계표가 발전해 1896년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로 출범했다. 당시 지수에 들어있던 12개 종목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종목은 GE 하나뿐이다.
창간호 1면을 보면 당시 경제사회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부 지역에서 철도요금 인하를 단행하려는 CB&T사 얘기가 비중 있게 다뤄졌다. 조지아주에서 영국 리버풀로 수출되는 목화를 대량 매입한 헨리클류스사 소식을 전하면서 클류스가 대통령 경제고문이었다는 사실도 적었다. 이 밖에 밀 풍작 소식, 석탄 파업 뉴스 등이 실렸고 업종으로는 은행 보험 출판사 전구회사 등이 첫날 기사에 등장한다. 첫 신문에는 스포츠도 다뤄졌다. 신시내티에서 열린 헤비급 맨손권투 챔피언전 소식이었다.
창간사에서 다우와 존스 등은 “기사 소식 도표 광고 등 모든 지면을 통해 우리는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월가의 변화상을 담아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월가는 지금 세계금융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2008년에는 경제위기의 진원지로 지목돼 반자본주의 운동세력(Occupy Wall Street)에 점령당하는 소동도 겪었다. 이런 역사를 월지가 지켜봐 왔다. 참 오랜 세월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어제는 월지의 창간 125주년이었다. 월지는 이날 기념판을 내면서 125년 전 첫 판 신문 1면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창간 당시 월지는 4쪽짜리 석간신문이었다. 수년간 ‘고객에게 드리는 오후 편지’라는 프린트물을 찍어 주식중개인들에게 나눠주던 기자 3명(찰스 다우, 에드워드 존스, 찰스 버그스트레서)이 신문으로 창간하면서 전신서비스도 시작했다. 신문값은 부당 2센트였는데 현재 물가로는 51센트 정도다.
창간호 첫 페이지는 사진이나 도표 없이 흑백 텍스트로만 꾸며져 있다. 양옆에는 증권중개회사 등의 유료 광고도 실었다. 기사는 제목이나 편집을 고려하지 않은 정보지 형식으로 게재됐다. 눈에 띄는 것은 1면 톱기사 자리에 ‘주식가격 변화표’를 넣었다는 점이다. 6줄이 안 되는 짧은 기사지만 주식시장 흐름이 잘 요약돼 있다. 주가가 1885년에 강세가 시작돼 1887년 5월 정점을 찍고 다시 약세로 돌아섰다는 흐름을 기록하고 있다. 이 통계표가 발전해 1896년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로 출범했다. 당시 지수에 들어있던 12개 종목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종목은 GE 하나뿐이다.
창간호 1면을 보면 당시 경제사회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부 지역에서 철도요금 인하를 단행하려는 CB&T사 얘기가 비중 있게 다뤄졌다. 조지아주에서 영국 리버풀로 수출되는 목화를 대량 매입한 헨리클류스사 소식을 전하면서 클류스가 대통령 경제고문이었다는 사실도 적었다. 이 밖에 밀 풍작 소식, 석탄 파업 뉴스 등이 실렸고 업종으로는 은행 보험 출판사 전구회사 등이 첫날 기사에 등장한다. 첫 신문에는 스포츠도 다뤄졌다. 신시내티에서 열린 헤비급 맨손권투 챔피언전 소식이었다.
창간사에서 다우와 존스 등은 “기사 소식 도표 광고 등 모든 지면을 통해 우리는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월가의 변화상을 담아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월가는 지금 세계금융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2008년에는 경제위기의 진원지로 지목돼 반자본주의 운동세력(Occupy Wall Street)에 점령당하는 소동도 겪었다. 이런 역사를 월지가 지켜봐 왔다. 참 오랜 세월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