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는 참으로 질기다. 대통령 앞에서까지 철폐를 약속해 놓고도 이런저런 핑계로 유야무야 될 정도다. 지난 3월20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7시간 넘게 벌인 ‘규제개혁 끝장토론’(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의 결과가 그렇다. 당시 장관들이 6월 말까지 석 달 내 풀겠다던 규제 25건 중 고작 7건만 해결됐다는 것이 어제 날짜 한경 보도다. 14건은 전혀 손도 안 대고 시간만 보냈다고 한다. 대통령이 챙겨도 이 모양인데 다른 것은 보나마나다. 규제 칼자루를 쥔 공무원에게 규제개혁을 맡겨선 안 된다는 사실만 새삼 확인케 됐다.

지난 100여일을 돌이켜보면 대통령의 강한 의지는 규제 폭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규제개혁이 ‘돈 안 쓰는 투자’라는 사실은 규제를 당해본 기업이라면 백번 공감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대통령이 아무리 일자리 빼앗는 규제는 범죄요 암덩어리라고 외쳐도 관료들은 되레 ‘착한 규제’ ‘필수 규제’ 운운하며 빠져나갈 궁리에 바빴다. 정형화된 규제를 푸는 것도 어려운데, 눈에 안 보이는 공무원 재량권, 행정지도 같은 비정형 규제는 더욱 요원하다.

규제는 마치 물과 같아 조금만 빈틈이 보이면 여지없이 스며든다. 규제마다 임자가 있고, 먹이사슬이 있다. 게다가 규제 치고 명분 없는 것이 없다. 세월호 침몰, 경주리조트 붕괴 등 대형사고가 나면 곧바로 규제는 자가증식에 들어간다. 규제가 없어 사고가 난 게 아닌데도 언론은 대책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치고, 정치권은 이를 명분삼아 어마어마한 규제를 쏟아낸다. 그렇게 생겨나는 ‘OO방지법’은 무조건 금지하고 처벌하는 규제 덩어리가 되고 만다.

유감스럽게도 세월호 이후 규제개혁 동력이 예전같지 않다. 청와대는 규제개혁점검회의를 차일피일 미루고, 1급 개방직으로 공모 중인 총리실 규제조정실장은 6개월째 적임자를 못 찾고 있다. 규제 심사를 맡는 규제개혁위원장도 석 달째 공석이다. 이래서야 관료들이 규제개혁 시늉이라도 하겠는가. 여기서 멈추면 역대 정권의 실패과정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말 것이다. 규제공화국에는 미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