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머로 돈방석…문구회사서 거대 문화콘텐츠사로 변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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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Practice
세계 2위 완구업체 - 미국 '해즈브로'
폴란드 이민자 형제가 창업
필통 만들다 완구회사로 명성
한때 제품 평판 악화·내부 갈등
활발한 M&A통해 제2의 도약
영화는 물론 게임시장에도 진출
해즈브로 변신은 아직 진행형
7억弗 - 2007년 트랜스포머 흥행 수익
45% - 1995년 매출액 중 수출 비중
세계 2위 완구업체 - 미국 '해즈브로'
폴란드 이민자 형제가 창업
필통 만들다 완구회사로 명성
한때 제품 평판 악화·내부 갈등
활발한 M&A통해 제2의 도약
영화는 물론 게임시장에도 진출
해즈브로 변신은 아직 진행형
7억弗 - 2007년 트랜스포머 흥행 수익
45% - 1995년 매출액 중 수출 비중

○폴란드 이민자 출신 형제가 창업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인 만큼 견제가 없을리 없었다. 하센펠드 브러더스에 하청을 주던 필통 제작사는 따로 납품을 받는 한편 독자적인 저가 제품을 내놓으며 하센펠드 브러더스의 밥그릇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발끈한 하센펠드 형제는 자신들이 직접 필통을 만들어 내다파는 공세적인 전략을 폈다. 내친김에 연필 제작까지 뛰어들었다. 이때의 변신은 향후 45년간 하센펠드 브러더스에 안정적인 수입원을 가져다주게 된다.
1930년대 말 하센펠드 형제는 병원놀이와 점토 장난감을 내놓으며 완구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50년 뒤에 나올 대박 캐릭터인 트랜스포머의 씨앗을 뿌린 시기다. 이후 립스틱 등 여아들의 장난감 화장품을 출시해 인기를 끌었다. 성장한 후 완구 부문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메릴 하센펠드는 1952년 ‘미스터 포테이토 헤드’라는 완구를 출시했다. 하센펠드 브러더스가 완구회사로의 명성을 굳히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예쁘고 아름다운 외형 일색이던 기존 장난감과 달리 못생긴 감자를 의인화한 이 제품은 당시 “완구산업의 혁명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메릴 하센펠드의 형인 헤럴드 하센펠드는 완구 사업과 더불어 하센펠드 브러더스의 양대 축인 연필 제작 부문을 맡았지만, 회사의 무게 중심은 서서히 완구 사업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1964년 군인들의 모습을 역동적인 모형으로 재현해 내놓은 ‘지.아이.조’ 완구 세트는 미국의 아이콘으로 자리잡는 성공을 거둔다. 사내아이는 인형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깬 것은 물론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돼 TV프로그램에까지 진출했다. 1968년부터는 사명을 ‘해즈브로’로 변경했다.
공교롭게도 사명 변경 이후 해즈브로는 10여년의 암흑기로 접어들게 된다. 뜻밖에도 효자 상품이던 ‘지.아이.조’가 발목을 잡았다. 베트남 전쟁으로 반전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면서 군인을 형상화한 인형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차가워진 탓이다.
내부 갈등까지 불거졌다. 메릴 하센펠드가 사망한 후 그의 아들인 스티븐 하센펠드가 법정 상속인이 됐지만, 완구 사업에 비해 뒤처지고 있는 연필 사업에 불만은 품은 삼촌 헤럴드 하센펠드가 조카의 권위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영권을 둘러싼 친족 간 갈등은 1980년대 양측이 기업 분할에 합의하면서 비로소 해소된다. 완구 분야의 경영권을 장악한 스티븐 하센펠드는 지난 10여년간의 경영침체를 정비하기 위해 생산 제품을 간추리는 한편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내실경영에 치중했다.
○공격적인 M&A 통해 제2의 도약

1980년대 중반에는 해즈브로가 마텔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큰 장난감 회사로 올라서기도 했다. 1989년에는 양배추 인형으로 잘 알려진 콜레코의 판권을 8500만달러에 인수했다. 수출 규모를 늘리기 위해 그리스와 헝가리, 멕시코 등에도 뛰어들었다. 1995년 기준 해즈브로는 매출액 중 45%를 수출을 통해 벌어들였다. 10년 전에 비해 수출 규모가 10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트랜스포머는 2007년 영화로 처음 제작되면서 히트를 쳤다. 덩달아 완구 매출도 급증해 해즈브로에 엄청난 수익을 안겼다. 그해 흥행수익만 7억달러에 달했을 정도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다른 장난감 분야 기업의 주가가 연 40% 가까이 떨어졌을 때 해즈브로는 되레 3% 상승했던 것도 트랜스포머의 덕이다.
트랜스포머의 성공은 특히 2000년부터 해즈브로에 합류한 현 최고경영자(CEO) 브라이언 골드너의 역할이 컸다. 트랜스포머의 영화제작자 로렌조 디 보나벤추라는 2008년 12월 마켓워치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통상 이런 영화 작업은 논의하는 과정만 몇 달이 걸리는데, 골드너와는 곧 의기투합했다. 두세 번 만난 뒤 일이 끝나버렸다. 골드너는 본능적인 직감과 역동적인 상상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트랜스포머 제작에 큰 기여를 했다.”
영화 트랜스포머는 91년 역사의 해즈브로를 단순한 장난감 회사에서 지식재산권을 보유한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재탄생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옷감 사업에서 문화콘텐츠 제작사로 거듭난 해즈브로의 변신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다. 골드너는 마켓워치 등 외신들과의 인터뷰에서 “영화는 물론 비디오 게임, 테마파크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해즈브로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남은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