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국가혁신' 다짐을 선도해 나가려면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후 우리는 대통령의 다짐을 들었다. 국가개조(국가혁신)를 하겠다는 말이었다. 논자들은 기민하게 역사와 기억을 더듬어 1930년대 일본 우익과 군부가 외치던 ‘국가개조론’과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끄집어내 힐난했고, 다른 논자들은 너무 큰, 실현가능성 없는 ‘거대담론’ 아니냐며 억하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도 참혹하고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보고 뭐라 할 말을 잃은 터에 우리는 대통령의 결연한 다짐을 그대로 믿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대통령의 다짐이 과연 지켜질지, 아니 그 약속 자체를 잊은 것은 아닌지 의혹이 자라기 시작했다.

총체적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정홍원 국무총리를 유임시킨 것은 아무리 고육지책이었다고 해도 쉽사리 납득되지 않는다. 인사청문회의 지나치게 높은 벽이나 신상털기식 여론몰이 검증에 대한 문제의식에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하지만 결국 중대한 결함이 드러난 인사를 애당초 총리 후보로 추천한 것 자체가 더 심각한 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논리적으로 맞고 또한 대중의 정서이기도 하다. 국회 인사청문 이전 단계에서 당연히 걸러졌어야 할 문제 때문에 여론의 압력에 밀려 사퇴한 인사들을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했지만 이런 사태를 법치주의나 적법절차 문제로 몰고 가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짧고 허망하게 끝나버리는’ 한국의 국회 인사청문제도 자체가 가진 한계 때문에 일단 청문절차에 들어가면 대통령이 야당의 의견을 ‘참고’하거나 읍참마속의 결단을 내리지 않는 이상 심각한 결함이 드러나더라도 임명 강행을 막기 어렵다. 총리는 국회 동의를 받아야 돼 인사청문을 통과해도 통제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여대야소 국면에서는 그마저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여당 내 이탈표 기류에 대한 우려가 임명권자와 후보자 간의 사퇴 여부 결정에 영향을 미쳐온 헌정공학적 현상을 보더라도 문제가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무엇보다 후보자 물색의 범위를 넓혀 유능하고, 적어도 청문을 통과할 만큼 청렴한 인사를 찾아야 한다. 책임은 청와대에 있다. 후보군이 너무 편협하게 설정되지는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여권 원로 한 분이 “박근혜 대통령과 가장 다른 분을 고르면 된다”고 말한 것도 바로 그런 맥락일 것이다. 오히려 국가개조의 다짐을 선도해 나가려면 더욱더 그래야 하지 않을까. 둘째,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청와대에서 더 면밀하고 강도 높은 검증을 해야 한다. 적어도 국회의 공식적인 인사검증 이전단계에서 이뤄지는 사회적 검증 프로세스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영향분석을 해야 한다. 이미 까다로운 사전 설문조사를 거친다고 하지만 집단사고 문제 때문에 후보자의 응답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본의 아니게 총리 제2기를 시작한 정 총리는 공직개혁, 안전혁신, 부패척결 의지를 밝히고 관피아 척결은 7월 말까지, 국가안전 분야는 내년 2월 말까지 틀을 갖추겠다고 말했다. 부패척결이나 의식개혁같이 시기를 따지기 어려운 것도 있고, 국회에서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등 국가개조 관련법안처럼 야당의 협조가 필요한 과제도 적지 않다. 아무튼 심기일전 애를 쓰기는 많이 쓴 것 같다. 하지만 사정은 엄혹하다.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다짐한 약속을 실행할 책임을 떠맡게 됐기 때문이다. 총리가 그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면 부메랑이 돼 정권 최대의 위험으로 돌아올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눈은 정 총리보다는 박 대통령에게 쏠려 있다. 국가개조를 하려면 정작 대통령 자신이 국정운영 철학과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더 이상 만기친람하지 않고 정 총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대통령의 그것이라고 인식될 정도로 대통령 스스로 총리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을까. 물론 DNA 자체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생래적 제약보다는 후천적 상황 대응능력이 더 많은 것을 결정한다. 그 시금석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 장관 인사, 그리고 해양시대, 기후변화시대에 오히려 더욱 중점적으로 육성해 나가야 할 해양경찰과 소방방재기관 문제를 포함한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처리가 될 것이다.

홍준형 < 학술단체총연합회 회장·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joonh@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