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규제라는 은행, 아니라는 당국
“각 은행이 금리와 수수료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게 해달라.”(은행들)

“금리와 수수료 결정은 이미 자율화돼 있다.”(금융당국)

금융당국은 청와대의 규제개혁 방침에 따라 지난 3~6월 은행, 보험, 증권, 카드 등 각 업권에서 규제개선 요청사항을 받았다. 은행업권이 전달한 요청사항 중 하나는 금리와 수수료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이 내놓은 답의 취지는 ‘이미 자율화돼 있는데 무엇을 자율화해달라는 것이냐’다.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반응에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과 업계 간 현격한 인식 차이를 재확인하는 데 만족했다”고 씁쓸해했다.

당국의 대답은 표면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정부는 1991년 금리자유화 4단계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단계적으로 자유화를 시행했다. 금리 규제가 시장 왜곡을 발생시킨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결과다. 당국은 규제 실효성이 적은 일부 여·수신금리부터 순차적으로 자유화했다. 현재 정부 기금 등으로 운용되는 일부 정책 상품을 제외하고 정부가 은행의 여·수신 금리를 직접 결정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은행업권은 여전히 금리나 수수료 결정에 정부가 개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원하는 수준으로 은행이 결정하도록 뒤에서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로자재형저축 등의 상품을 보면 은행별 금리가 대부분 같다. 달라도 0.1%포인트 안팎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금융당국이 강요한 일정 ‘수준’을 맞춘 결과라는 게 은행들의 주장이다.

금융당국도 ‘말로만 자율화’라는 것을 비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사석에서 만난 한 금융당국 간부는 ‘금융회사에 자율성을 더 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말에 “금융회사, 적어도 은행은 공공적 성격이 강하다”고 답해 이런 관행을 인정했다.

금융당국은 지난 10일 업권별 의견 등을 수렴해 금융규제 개혁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업 발전을 위한 금융당국의 시도는 마땅히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은행권에서 이를 크게 환영한다는 반응은 들리지 않는다. 진정성이 결여된 개혁방안이 아니었는지 당국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김일규 금융부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