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쌀시장 개방, 정치적 흥정대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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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미룰 수 없게 된 쌀 관세화
'수입쌀 용도'등 협상 카드 들고
농업 피해 최소화할 방안 찾아야"
최원목 <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수입쌀 용도'등 협상 카드 들고
농업 피해 최소화할 방안 찾아야"
최원목 <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올해 말로 설정된 세계무역기구(WTO) 한국 쌀시장 개방시점이 다가옴에 따라, 정부는 공청회 개최와 국회보고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쌀 관세화 절차를 밟고 있다. 농민들은 정부가 농업지원 대책을 철저히 밝힐 것을 조건으로 쌀 관세화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단체와 쌀 관세화 유예를 유지하기 위한 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단체로 양분돼 있다. 국회는 쌀 관세화에 따른 국내 절차를 엄격히 밟아나가라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관련 국회 상임위원회에서는 관세화를 위해서는 국내법(양곡관리법) 개정절차를 밟아야 하고, 정부가 관세율을 WTO에 통보하기 전에 국회에 제시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까지 대두되고 있다.
현상유지 협상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우리와 같이 쌀 관세화를 최후까지 유예했던 필리핀의 사례에서 이미 드러났다. 필리핀은 유예기간이 끝나가자 현상유지 협상을 주장했다가 WTO 회원국들로부터 “쌀 관세화 유예 연장은 1회에 한해 가능하고 필리핀은 2004년 말에 이미 이를 사용했으므로 추가 연장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통보받았다. 그래서 더 이상 유예협상 개최를 주장하지 못하고 의무수입물량을 대폭 늘리면서 WTO 의무면제를 획득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쌀 관세화를 위해 국내법 개정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도 잘못된 해석이다. 현행 양곡관리법상 의무수입물량 이외의 쌀 수입은 허가대상 품목이 아니어서 관세화로 인해 양곡허가제를 손질할 필요가 없다. 또한 관세법은 쌀에 대해 5%의 기본관세율을 책정하고 있으나, WTO 양허관세율이 정해지면 이것이 우선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것은 앞으로 우리가 제안하고 WTO가 검증하는 관세율을 수입쌀에 대해 적용하는 것을 이미 국내법이 예정하고 있기에 이를 개정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
정부가 관세율을 WTO에 통보하기 전에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헌법상 조약체결에 대한 국회의 비준동의권을 오해한 데서 출발한 것이다. 헌법 60조가 국회에 부여한 권한은 새로운 조약의 체결시 비준동의권이 있다는 것이어서, 쌀 관세화와 같이 이미 체결된 WTO 농업협정상의 관세화 의무 이행행위에 불과한 사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미 확정돼 있는 관세상당치 계산 수식에 따라 우리 정부가 관세율을 정하고, 이를 WTO에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WTO 회원국들은 일정한 검증절차를 거쳐 검증이 마무리됐다는 통보를 한다. 그 결과, 우리의 WTO 양허표는 기술적으로 수정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조약의 체결’에 해당하지 않아 국회에 동의권한이 없다.
만일 정부가 산정한 관세율에 대해 국회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면, 우리의 대외협상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WTO 검증과정에서 쌀 수출국들이 제시하는 이의제기가 타당한 것이면 이를 수용해 관세율을 낮춰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관세율 이외에도 국별쿼터 부여 여부, 수입쌀 용도제한 조건 수용 여부 등 협상해야 할 사안이 많아, 관세율을 다소 양보하더라도 다른 조건들을 부과받지 않도록 협상할 필요성도 있다. 그런데도 관세율에 대해 사전에 국회에서 동의받아야 한다면, 정부는 그 관세율을 지키느라 다른 요구조건들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외통수에 걸리게 된다. 쌀 시장개방 이후, 수입쌀을 가공용이나 해외원조용으로 돌릴 수 있어야 하고, 국별쿼터를 부과받지 않게 돼야, 우리 농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전장에 나가는 장수의 칼을 국민의 대표기관이 오히려 사전에 빼앗아서야 되겠는가.
쌀 관세화는 정치적 세력다툼의 대상이 아니다. 국익과 농민보호를 위해 무엇이 가장 합리적인 정책결정이고 추진절차인지를 모두가 한마음으로 협력해야 하는 과제인 것이다.
최원목 <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wmchoi@ewha.ac.kr >
현상유지 협상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우리와 같이 쌀 관세화를 최후까지 유예했던 필리핀의 사례에서 이미 드러났다. 필리핀은 유예기간이 끝나가자 현상유지 협상을 주장했다가 WTO 회원국들로부터 “쌀 관세화 유예 연장은 1회에 한해 가능하고 필리핀은 2004년 말에 이미 이를 사용했으므로 추가 연장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통보받았다. 그래서 더 이상 유예협상 개최를 주장하지 못하고 의무수입물량을 대폭 늘리면서 WTO 의무면제를 획득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쌀 관세화를 위해 국내법 개정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도 잘못된 해석이다. 현행 양곡관리법상 의무수입물량 이외의 쌀 수입은 허가대상 품목이 아니어서 관세화로 인해 양곡허가제를 손질할 필요가 없다. 또한 관세법은 쌀에 대해 5%의 기본관세율을 책정하고 있으나, WTO 양허관세율이 정해지면 이것이 우선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것은 앞으로 우리가 제안하고 WTO가 검증하는 관세율을 수입쌀에 대해 적용하는 것을 이미 국내법이 예정하고 있기에 이를 개정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
정부가 관세율을 WTO에 통보하기 전에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헌법상 조약체결에 대한 국회의 비준동의권을 오해한 데서 출발한 것이다. 헌법 60조가 국회에 부여한 권한은 새로운 조약의 체결시 비준동의권이 있다는 것이어서, 쌀 관세화와 같이 이미 체결된 WTO 농업협정상의 관세화 의무 이행행위에 불과한 사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미 확정돼 있는 관세상당치 계산 수식에 따라 우리 정부가 관세율을 정하고, 이를 WTO에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WTO 회원국들은 일정한 검증절차를 거쳐 검증이 마무리됐다는 통보를 한다. 그 결과, 우리의 WTO 양허표는 기술적으로 수정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조약의 체결’에 해당하지 않아 국회에 동의권한이 없다.
만일 정부가 산정한 관세율에 대해 국회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면, 우리의 대외협상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WTO 검증과정에서 쌀 수출국들이 제시하는 이의제기가 타당한 것이면 이를 수용해 관세율을 낮춰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관세율 이외에도 국별쿼터 부여 여부, 수입쌀 용도제한 조건 수용 여부 등 협상해야 할 사안이 많아, 관세율을 다소 양보하더라도 다른 조건들을 부과받지 않도록 협상할 필요성도 있다. 그런데도 관세율에 대해 사전에 국회에서 동의받아야 한다면, 정부는 그 관세율을 지키느라 다른 요구조건들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외통수에 걸리게 된다. 쌀 시장개방 이후, 수입쌀을 가공용이나 해외원조용으로 돌릴 수 있어야 하고, 국별쿼터를 부과받지 않게 돼야, 우리 농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전장에 나가는 장수의 칼을 국민의 대표기관이 오히려 사전에 빼앗아서야 되겠는가.
쌀 관세화는 정치적 세력다툼의 대상이 아니다. 국익과 농민보호를 위해 무엇이 가장 합리적인 정책결정이고 추진절차인지를 모두가 한마음으로 협력해야 하는 과제인 것이다.
최원목 <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wmchoi@ew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