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묻고, 답하고, 따지고…복싱경기 하듯 치열한 말싸움
햄릿형 인간이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망설이고 갈팡질팡한다.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남자냐, 여자냐’가 문제다. 아니, 선택하고 싶지 않은데 남자인지 여자인지 결정하라고 강요받는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말싸움 끝에 ‘햄릿’은 깨닫는다. ‘남자냐, 여자냐’가 아니라 ‘이 사람이냐, 저 사람이냐’의 문제라고. 그러고는 스스로에게, 말싸움 상대에게 묻는다. “왜 지금 나한테 ‘내가 뭐랑 같이 자는가’가 ‘내가 누구랑 같이 자는가’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거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소극장 ‘스페이스 111’에서 공연 중인 연극 ‘수탉들의 싸움’은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게 된 한 남자를 통해 정체성의 모호함과 사회가 규정한 틀, 분류의 모순을 이야기한다. 영국 신진 극작가 마이크 바틀릿의 2009년 작품을 노네임씨어터컴퍼니가 무대화했다.

닭싸움장을 연상시키는 단순한 육각형 무대에서 등장인물들이 시종일관 싸움을 벌인다. 몸으로 치고받는 싸움이 아닌 말로 하는 싸움이다. 권투 경기처럼 종소리로 라운드가 나뉜다. 처음엔 주인공 존과 남자, 다음엔 존과 여자, 이어 존을 사이에 두고 남자와 여자가 맞붙더니 남자의 아버지까지 등장해서는 네 명이 뒤엉켜 혼전을 벌인다. 하나같이 대단한 말싸움꾼들이다. 반전의 연속이다.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는 복잡한 인생이다.

지난해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연된 ‘러브,러브,러브’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 바틀릿은 이번 작품에서도 적나라하고 직설적이면서 일상적인 언어들을 충돌시켜 인간과 사회에 대해 깊이 통찰한다. 정교하고 세밀하게 고안된 대사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주제를 이끌어내 형상화하는 솜씨가 뛰어나다. 박은석 김준원 손지윤 선종남 등 배우들이 고르게 호연한다. 극의 템포와 리듬을 잘 조절하며 멋진 호흡을 보여준다. 말을 잘하는 인물들이 등장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명확하고 섬세하게 표현하는 연극의 본질적 재미와 즐거움을 충족시켜 주는 무대다. 내달 3일까지, 4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