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운데)는 16일 서울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경밀레니엄포럼에서 “선진국의 양적완화가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기웅 한국경제신문 사장,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 이 총재, 문희수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운데)는 16일 서울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경밀레니엄포럼에서 “선진국의 양적완화가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기웅 한국경제신문 사장,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 이 총재, 문희수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6일 한경밀레니엄포럼에 참석해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질문에 “성장의 내용을 봐야 한다”는 얘기를 되풀이해 강조했다. 아직은 방향성을 결정하기가 어렵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 경제는 3%대 후반의 성장률을 이어가겠지만 소비가 부진한 가운데 수출에만 기댄 결과”라며 “고용도 장년층과 서비스업에만 집중돼 개선의 여지가 크다”고 우려감을 표시했다.

한은은 지난 10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4.0%에서 3.8%로 내리며 이미 경기하방 압력을 강조한 바 있다. 이 총재는 이날 한발 더 나아가 “내수기반이 약해 해외 충격에 쉽게 흔들릴 수 있다”며 “내수를 살리려면 획기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새 경제팀과의 구체적인 정책공조 방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다만 한은이 언제든 거시경제 안정을 위해 제 역할을 해나갈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경 밀레니엄 포럼] "소비심리 개선 필요…금리인하 득실 다각도로 따져볼 것"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선진국 양적완화로 국제금융시장에 생긴 거품이 붕괴되면 새로운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타당한 지적이다. 지난달 말 국제결제은행(BIS) 연차총회에서도 각국 중앙은행 사이에서 논란이 됐다. 선진국의 양적완화 이후 시장 변동성이 낮아졌다. 저금리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위험자산 선호 심리는 확대됐다. 모두 글로벌 안정성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김 전 금감원장=물가안정과 고용안정을 목표로 하는 미국 중앙은행(Fed)과 달리 한국은 물가목표만 갖고 있다.

▷이 총재=한은법도 물가와 경기를 균형있게 고려할 것을 규정한다. 한은법 제1조는 ‘물가안정을 도모해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내용이다. 물가 수준에 문제없다면 경제발전에도 힘을 보태라는 의미다.

▷이재웅 성균관대 명예교수=올가을에 미국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끝내면 한은은 어떻게 대응하나.

▷이 총재=우려되는 점은 미국 기준금리 인상 전에 시장금리가 급등해 국내에서 자본이 유출될 가능성 등이다. 여러 시나리오를 상정해 대처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 교수=소비 촉진을 위해선 기준금리를 내려야 하지 않나.

▷이 총재=금리인하가 소비를 활성화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금리를 내리면 빚을 짊어진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은 줄어들겠지만 금융자산을 보유한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줄어든다. 물론 단기적으로 소비에 긍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계빚이 더 늘어나 중기적으로는 소비 여력을 제약하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양면성을 다 감안해야 한다.

▷이근 서울대 교수=중앙은행이 자본이동의 자율성과 통화정책의 독립성, 변동환율제 등 세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기 어렵다는 ‘트릴레마(세 가지 딜레마)’가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 총재=그렇다. 선진국은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모든 것을 살펴보고 결정한다’는 말을 쓸 정도다. 그러다 보니 중앙은행이 평소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인실 서강대 교수=정부가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개선하려 한다. 한은의 입장은.

▷이 총재=LTV·DTI 규제를 도입할 때와 현재의 상황, 규제 완화의 비용과 효과를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정부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한은 의견을 개진할 것이다.

▷이 교수=한국의 가계부채 규모를 어떻게 평가하나.

▷이 총재=가계빚이 가계 소비를 상당히 제약하는 수준에 와 있다. 하지만 급속한 차입 청산(디레버리징)은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는 가계빚이 증가하더라도 소득증가율을 넘어서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가계빚이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 가계빚 대부분은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단 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높은 저소득층 한계가구에 대한 대책은 필요하다.

[한경 밀레니엄 포럼] "소비심리 개선 필요…금리인하 득실 다각도로 따져볼 것"
▷장종현 비앤엠씨코리아 대표=경제 문제를 경제 정책으로만 풀기 어려운 시대다.

▷이 총재=사회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갈등 조정 비용이 높아졌다. 송전탑 하나 세우려 해도 갈등이 극심하고 해소 비용이 많이 든다.

▷윤만호 언스트앤영 부회장=한국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닮아가고 있다.

▷이 총재=타당한 지적이다. 급속한 고령화가 걱정스럽다.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도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최흥식 하나금융지주 고문=화폐유통 속도가 많이 떨어졌다. 돈이 제대로 돌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 총재=시장 전체의 유동성은 적지 않지만 신용이 낮고 취약한 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량기업과 비우량기업의 신용 위험 차이가 크다. 자금 흐름 개선을 위해 한은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김도훈 산업연구원장=규제개혁 등 장기대책과 별개로 경제주체 심리도 살려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총재=동의한다. 단기적인 심리 개선 노력도 함께 필요하다.

▷현정택 인하대 교수=물가안정목표를 연 2.5~3.5%로 하는 대신 3%로 정하고 상하 여지를 두는 것이 어떨까.

▷이 총재=그러면 한은의 목표가 단순히 3%로 인식돼 실제 목표와 달라질 것이다. 2016년 새 목표치를 정할 때 여러 의견을 모으겠다.

▷하태형 현대경제연구원장=위안화 직거래 시장이 생기면 단기적으로 혼란이 있지 않나.

▷이 총재=위안화 결제가 급속히 늘어나진 않을 것이다. 아직은 달러화 결제 관행이 강하다. 위안화 가치가 좀더 안정적이어야 결제비중이 늘어날 것이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