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보완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금이나 재정 지출을 늘리는 ‘재정보강’ 규모에 대해선 이전에 편성된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웃도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17일 새벽 경기 성남시 인력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와 만나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준비 사항 등 여러 가지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관련 입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법에는 내년 1월부터 시행하도록 돼 있지만 여러 문제가 노출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점을) 점검해서 시행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조만간 결론을 내겠다”고 말했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할당한 기준보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기업은 배출권을 사거나 과징금을 내도록 하는 제도다. 환경부는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오는 10월 기업별 배출량 허용치를 발표하고 내년 1월 전면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최 부총리가 ‘입법을 보완한다’고 발언한 것은 경기회복세가 불투명하고 기업의 투자심리가 최악인 점을 고려해 법에 정해진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시행 시기를 조정하거나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수정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은 기업들이 수십조원의 비용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이유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2020년 이후로 늦출 것을 지난 15일 정부에 공식 요구했다. 온실가스를 한국보다 많이 배출하는 나라들도 기업부담을 우려해 선뜻 시행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8.6%를 차지하는 중국과 15.1%인 미국, 일본(3.8%) 등은 온실가스 의무 감축 여부를 논의하는 ‘교토의정서’ 참여를 거부하거나 탈퇴한 상황이다.

"대규모 재정확장"…금리인하 기대 내비쳐

최경환 부총리는 그동안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도입에 꾸준히 반대했다.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던 2010년 국회 답변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면 산업계에 심한 타격을 줄 수 있어 제도 도입 논의 자체를 그만둬야 한다”고 했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재검토 방침은 최 부총리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시도하는 부처 간 정책조정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산업부는 그동안 “업계에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반대한 반면 환경부는 “이미 산업계를 충분히 배려했다”며 예정대로 강행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와 함께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자동차업계가 자동차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며 반발하고 있는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에 대한 논의도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최 부총리는 이날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경기부양 규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올 하반기에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고도 경기 보강이 가능할 정도로 재정을 확장해 경기 하강에 대응하겠다”며 “재정 확대의 정도가 추경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정부가 편성했던 추경 예산안 규모는 28조4000억원이었고, 지난해엔 17조3000억원의 추경 예산이 편성됐다.

최 부총리는 또 기업이 쌓아 둔 사내유보금을 사용하도록 각종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혔다. 그는 “기업이 과도하게 사내유보금을 쌓아두면서 경제가 선순환 구조로 돌아가지 않는 측면이 있었다”며 “(사내유보금 사용을) 유도하는 데 방점을 두고 계획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 부총리는 기준금리 인하에 대해선 이전보다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보냈다.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 기준금리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현재의 경기 상황을 보면 그(금리)에 대한 유추가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를 부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이어 “경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지금까지 (한국은행에) 충분히 전달됐다고 본다”며 “이보다 더 명시적으로 언급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금리 인하에 따른 최대 리스크로 꼽히는 가계부채에 대해서는 “금리가 내려간다고 가계부채가 악화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금리가 인하되면 이자 부담이 줄어 가계 부담도 감소해 오히려 가계부채 문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기업 공장이나 사업장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미리 정하고, 배출량을 초과하거나 남은 부분을 다른 기업과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 유럽연합(EU) 28개국과 뉴질랜드 스위스 카자흐스탄 등 모두 38개국이 이 제도를 도입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