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블루스의 전설 조니 윈터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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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 블루스’의 전설인 기타리스트 조니 윈터가 16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별세했다. 향년 70세.
그의 공식 페이스북에 올라온 성명에 따르면 윈터는 이날 스위스 취리히의 한 호텔방에서 숨을 거뒀다.
성명은 “고인의 부인과 가족, 밴드 동료 모두 사랑하는 사람과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를 잃은 데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사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취리히 경찰은 그의 죽음을 형사사건으로 의심할만한 대목은 없지만 검찰이 부검을 지시했다고 발표했다. 윈터는 오는 9월 2일 새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었다.
1944 년 텍사스주 보몬트에서 태어난 윈터는 다섯 살에 클라리넷을 연주했고 몇 년 뒤부터는 기타를 쳤다. 윈터의 공식 웹사이트에 따르 면 고인은 14살의 나이에 형 에드가와 함께 처음 밴드를 결성했다. 그는 선천성 색소 결핍인 백피증과 길게 늘어트린 하얀 머릿결 로 무대에선 단연 눈에 띄는 연주가였다.
윈터는 1968년 음악잡지 롤링스톤이 텍사스 음악 무대를 소개하면서 그 를 재 니스 조플린의 뒤를 잇는 최고 유망주로 꼽아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윈터는 음반 계약을 맺고 ‘굿모닝 리틀 스쿨걸’ 같은 히 트곡을 냈으며 1969년 세계적인 음악 축제 우드스톡 페스티벌을 통해 이름을 널리 알리면서 1960~70년대를 풍미했다.
마 약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공백기를 가진 윈터는 최근 수년간 슬래시, 에릭 클랩턴, 올맨 브라더스 등 다양한 장르의 연주자와 협연하 면서 계속 레코딩 작업을 해왔으며 유명 음악상 후보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팬들이 록스타로 대성하기를 바랐지만, 윈터 는 블루스 음악만 고집했으며 백인 연주자로는 드물게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의 공식 페이스북에 올라온 성명에 따르면 윈터는 이날 스위스 취리히의 한 호텔방에서 숨을 거뒀다.
성명은 “고인의 부인과 가족, 밴드 동료 모두 사랑하는 사람과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를 잃은 데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사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취리히 경찰은 그의 죽음을 형사사건으로 의심할만한 대목은 없지만 검찰이 부검을 지시했다고 발표했다. 윈터는 오는 9월 2일 새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었다.
1944 년 텍사스주 보몬트에서 태어난 윈터는 다섯 살에 클라리넷을 연주했고 몇 년 뒤부터는 기타를 쳤다. 윈터의 공식 웹사이트에 따르 면 고인은 14살의 나이에 형 에드가와 함께 처음 밴드를 결성했다. 그는 선천성 색소 결핍인 백피증과 길게 늘어트린 하얀 머릿결 로 무대에선 단연 눈에 띄는 연주가였다.
윈터는 1968년 음악잡지 롤링스톤이 텍사스 음악 무대를 소개하면서 그 를 재 니스 조플린의 뒤를 잇는 최고 유망주로 꼽아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윈터는 음반 계약을 맺고 ‘굿모닝 리틀 스쿨걸’ 같은 히 트곡을 냈으며 1969년 세계적인 음악 축제 우드스톡 페스티벌을 통해 이름을 널리 알리면서 1960~70년대를 풍미했다.
마 약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공백기를 가진 윈터는 최근 수년간 슬래시, 에릭 클랩턴, 올맨 브라더스 등 다양한 장르의 연주자와 협연하 면서 계속 레코딩 작업을 해왔으며 유명 음악상 후보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팬들이 록스타로 대성하기를 바랐지만, 윈터 는 블루스 음악만 고집했으며 백인 연주자로는 드물게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광을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