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업체 관계자가 지난 18일 인천 북항의 한 야적장에 쌓여 있는 중국산 H형강 제품의 두께를 재고 있다. 이상은 기자
국내 철강업체 관계자가 지난 18일 인천 북항의 한 야적장에 쌓여 있는 중국산 H형강 제품의 두께를 재고 있다. 이상은 기자
“이것 좀 보세요. 두께가 6.8㎜네요. 두께 9㎜짜리 제품인데…. ±1㎜까지는 허용되니까 아무리 얇아져도 8㎜는 돼야 하는데, 이것은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겁니다.”

지난 18일 국내 철강사 관계자들과 함께 방문한 인천 북항의 한 H형강 야적장. 사람 키보다 높이 쌓인 제품들은 거의 모두 중국산이었다.

‘당산홍런스틸’ 등 제조자를 표시한 제품도 있었지만 어림잡아 보기에도 절반가량은 아예 제조자·규격 등을 적은 스티커조차 없었다. 스티커를 일부러 잡아 뜯은 흔적이 역력한 제품도 부지기수였다.

철강사 관계자는 “수출할 때는 스티커가 있어야 하니 일단 붙였다가 한국에 도착하면 떼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함량 미달 제품이다보니 추후에 발생할 수 있는 분쟁소지를 없애려는 취지라는 것이다.

○중국산 H형강 수입량 급증

두께·무게 미달되는 中철강 '산더미'…'제2 마우나리조트' 우려
중국산 함량 미달 철강 제품이 국내에 무분별하게 반입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정량 제품에 비해 두께가 얇고 무게도 덜 나가는 불량품이 대부분이다.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정량 제품보다 훨씬 싼값에 거래돼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

문제가 심각한 중국산 품목은 건설자재로 쓰이는 철강이다. 5000㎡ 이하 사업장에 대해서는 현장 감리를 받지 않아도 되는 등 감시가 느슨해서다. 공사비를 아끼려는 건설업자들이 중국산 불량품을 사서 쓴다.

대표적인 제품이 H형강이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2012년 수입된 중국산 H형강은 58만8000t이었는데 지난해 84만4000t으로 43% 증가했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53만3000t이 들어왔다. 전체 수입 H형강 중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92.2%까지 올라갔다.

○t당 30~40% 싸게 유통

값이 싼 만큼 품질은 조악하다. 이날 야적장에서 두께가 10㎜여야 하는 H형강 제품들을 재본 결과 8.057㎜, 8.103㎜ 등 대부분이 규격에 크게 미달했다. 이조차도 균일하지 않았다. 두께 9㎜짜리여야 하는 제품이 한쪽 끝에서 재면 6.8㎜고 다른 쪽 끝에서 재면 7.2㎜인 식이었다.

철강사 관계자는 “H형강은 가운데 연결부위를 둥글게 처리해야 하는데 최대한 직각에 가깝게 파내는 식으로도 무게를 줄인다”며 “시중에 나돌아다니는 중국산 제품은 대부분 무게가 정량 대비 10~15% 적다”고 말했다. 드물게는 20%까지 줄인 제품도 있다고 했다.

한 철강유통업체 관계자는 “국산 H형강 제품이 t당 70만~75만원을 받는다면 중국산 정량 제품은 57만~60만원 선”이라며 “중국산이고 정량에 미달하는 제품이라면 t당 55만원 이하, 심하게는 52만원까지도 내려간다”고 전했다. 국산 정량 제품과 가격이 30~40% 차이나는 셈이다.

철강사 관계자는 “쌓이는 눈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무너진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도 중국산 불량 철강을 사용한 사례”라며 “하중을 견디는 힘이 훨씬 작지만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확인할 수 없으니 그냥 쓰는 일이 잦다”고 했다.

○“단속권한 없다” 정부는 뒷짐

중국산 제품이 범람하자 철강업계는 국산 H형강에 ‘HS(현대제철)’나 ‘DK(동국제강)’ 등 롤마크를 찍어 판매하기로 12일 결의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지 미지수다.

이미 이 같은 롤마크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철근 제품의 경우 중국에서부터 HS, DK라고 찍어서 나온 제품이 수입돼 골머리를 앓고 있어서다. 국내 수입업자와 중국 철강회사가 손잡고 위조품을 유통하는 셈이다.

정부는 여태 ‘별 도리가 없다’며 속수무책이다. 오금석 철강협회 홍보팀장은 “중국 정부에 항의하면 그것은 한국 정부가 수입할 때 걸러내야 할 문제라 하고, 수입품을 규제하는 관세청에서는 원산지를 속인 게 아니라 무게나 두께 등을 속인 것은 잡을 권한이 없다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인천=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