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통일준비위, 정론을 공유해야 한다
남북회담 대표들이 만나면 “평화통일합시다”라는 덕담으로 첫 인사를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더 이상 이어갈 통일얘기는 없다. 남(南)이 바라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 입각한 평화통일이고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변화가 필수이지만, 북(北)이 말하는 평화통일이란 ‘남조선 혁명’을 통해 한국을 ‘수령님을 떠받드는 주체사회’로 바꿔 적화시킨다는 뜻이다. 이 상태에서 남북은 70년 동안 서로 다른 통일노래를 불러왔을 뿐이다.

마침내 통일준비위원회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적 구성을 보면 ‘모두’를 아우르고자 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고심이 듬뿍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이라면 이 기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성원해야 하고, 섣부른 칭찬이나 비판보다는 상당기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본다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통준위가 생산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통준위는 기존의 통일관련 부처나 기구들과는 차별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과거 위원회들에 대한 국민의 기억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전문성보다는 명망가 위주로만 구성돼 생산성을 발휘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치열한 브레인스토밍보다는 띄엄띄엄 느슨한 만남을 이어가면서 관련조직들의 아이디어를 수집해 재정리하는 수준에 그침으로써 옥상옥(屋上屋)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사례도 없지 않다.

둘째, 통준위가 정치화의 대상이 되거나 공개적 난상토론장이 돼서는 곤란하다. 통준위가 생산할 통일전략 중에는 공개됨으로써 불필요하게 남북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거나 국내 정치에 악용될 소지를 가진 것들이 포함될 것이다. 때문에 공개해야 할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운영의 묘를 살릴 필요가 있다.

셋째,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 모두가 핵심적인 통일정론에 대해 합의를 공유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통일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헌법이 정한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입각한 통일’ 이외의 것들을 거론해서는 안 되며,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도 당연히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전제한 것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통일의 과정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 사회와 정치권에서는 “북한 정부를 포용해 평화로운 남북관계를 유지해야 평화통일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이런 주장은 ‘평화적 분단관리’를 위한 정론은 될 수 있어도 통일을 위한 정론은 아니다. 평양 정부를 인정·포용하는 것은 분단기간 동안 상생(相生)하자는 것으로 대북정책의 중요한 목표의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자유민주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의 변화를 선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주민을 포용하는 지원과 함께 북한 정부에 변화를 설득하거나 강제할 수 있는 지렛대를 키워야 한다. 인권개선을 촉구하고 주민이 외부와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튼튼한 안보는 기본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분단관리론자들이 스스로를 ‘평화통일 세력’으로 칭하면서 북한의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반통일’로 매도하는 ‘통일담론의 보혁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통준위 내에서는 이런 현상이 없어야 한다.

통준위는 통일정론에 입각해 ‘방향성이 뚜렷한 구체적인 통일전략’을 만들어내는 기구가 돼야 한다. 남북 정부가 합의하는 통일방안은 어차피 존재하지 않는데도 북한 눈치를 살피거나 국내 여러 정파들을 의식해 다양한 방향성의 대안들을 나열하는 식이 된다면, 거기서 값진 통일전략들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통준위에 거는 국민의 기대는 과거 여느 위원회들의 경우와는 다르다.

김태우 < 동국대 석좌교수·객원논설위원 defensektw@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