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을 주도하며 급성장한 미국 사모펀드 운용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사모펀드들이 기업을 인수한 뒤 해당 기업에 막대한 관리 수수료를 물리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보고 조사를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사모펀드들은 “사적으로 맺은 계약조건이라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SEC는 각종 이해상충 문제와 법인세 회피 의혹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동안 금융감독 당국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고수익을 올리던 사모펀드들이 ‘도마에 오른’ 수수료 논란에 어떻게 대응할지 월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리포트] M&A 빚 떠넘기고 수수료 챙기고…도마에 오른 사모펀드
피인수 기업에 과도한 관리 수수료

SEC는 지난 5월 사모펀드 수수료 조사에 착수했다. 사모펀드에 대한 조사 권한을 처음으로 부여한 도트-프랭크법이 제정된 뒤 2012년 실시한 업계 동향 조사에서 수수료 관행에 문제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SEC는 블랙스톤, 칼라일, KKR 등 사모펀드들이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피인수 기업에 인수비용을 떠넘기는 것에 더해 관리 수수료 명목으로 추가 부담을 지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KKR은 2007년 지불결제 회사인 퍼스트데이터를 LBO 방식으로 300억달러에 인수했다. KKR이 퍼스트데이터의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면서 퍼스트데이터는 인수자금의 80%에 달하는 240억달러를 부채로 떠안았다. KKR은 인수 후 퍼스트데이터로부터 각종 수수료를 받아갔다. 양측의 계약에 따르면 퍼스트데이터는 KKR에 2019년까지 매년 관리 수수료만 2000만달러를 지불하게 돼 있다.

FT는 KKR이 관리 수수료뿐만이 아니라 각종 인수주선, 자문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최근 3년간 1억1700만달러를 받아갔다고 추정했다. SEC는 사모펀드 내 인수영업 사업부나 사모펀드 계열 컨설팅 회사가 피인수 기업의 인수주선 업무나 자문 업무를 하고 수수료를 받는 것이 이해상충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앤드루 보던 SEC 조사팀장은 지난 5월 조사에 착수하면서 “사모펀드의 자문료 등은 상법상의 이해상충 조항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인세 회피 의혹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사모펀드는 수수료를 통해 법인세를 회피한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피인수 기업이 사모펀드에 수수료를 지급하면 이익이 줄고, 이익을 기준으로 부과되는 법인세도 감소하게 된다. 주목할 점은 사모펀드들은 투자조합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법인세(최고 39.1%)가 아닌 자본소득세(15%)를 낸다는 것이다.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가 소득세 없는 조세 피난처에 본사를 두고 수수료로 받은 돈을 본사로 이전하면 자본소득세조차 내지 않아도 된다”며 “금융 당국이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레그 폴스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재무부는 사모펀드에서 걷어야 할 연간 수억~수십억달러의 세수를 잃고 있다”며 “지난 10년간 사모펀드들이 피인수 기업에 수수료를 물려 절약한 법인세가 110억달러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정기적으로 받는 관리 수수료는 사실상 배당에 가깝다”며 “수수료도 배당으로 보고 과세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운용보수 줄자 관리 수수료로 눈돌려

사모펀드들이 관리 수수료에 ‘집착’하게 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존 보수체계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은행 등 제도권 금융회사들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상대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로운 사모펀드들이 공격적인 M&A로 고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한편에선 사모펀드들이 난립하고 ‘큰손’인 연기금들이 주요 투자자로 등장하면서 투자자들로부터 받는 운용 수수료와 성과보수가 낮아졌다.

사모펀드들은 줄어든 운용 수수료를 만회하기 위해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피인수 기업에서 더 많은 관리 수수료를 거둬 투자자에게 받던 운영비를 피인수 기업으로부터 뽑아내기로 한 것이다.

심지어 파산 직전 기업에서까지 수수료를 받아갔다. 골드만삭스 사모펀드, TPG캐피털, KKR은 2007년 텍사스주 전력회사인 ‘에너지퓨처홀딩스’를 인수한 후 2013년까지 관리 수수료로 2억4800만달러를 걷어갔다. 이들은 지난 4월 회사가 파산하기 7개월 전까지도 자문료 명목으로 매년 3500만달러를 가져갔다. 루도빅 팔리포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2004~2013년 사모펀드 업계가 챙긴 주요 수수료는 전체 차입매수 규모의 2.2%인 280억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사모펀드 “수수료는 합리적인 수준”

사모펀드 업계는 이 같은 관리 수수료 비판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모펀드 코너스톤의 알버트 호크 회장은 “관리 수수료로 인해 피인수 기업의 기업가치가 떨어지면 펀드 투자들과의 소송을 피할 수 없다”며 “수수료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규제조항이 생기기 전에 맺은 계약 조건에 대해 법적 근거 없이 SEC가 간섭하는 것은 문제”라고 덧붙였다.

스티브 저지 사모펀드성장자본위원회 대표 역시 “수수료 계약은 사모펀드와 기업 양측의 전문가 합의로 이뤄지는 것”이라며 “수수료를 받는 것이 법적인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