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신문, 종이로 읽어야 반듯한 인성 길러져"
“책과 신문을 종이로 읽어야 반듯한 인성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파주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사진)는 “요즘 디지털 문화는 너무 가볍고 단순하며 공격적”이라고 개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76년 한길사를 창립한 이래 38년 동안 외길을 걸어온 국내 출판계의 산증인이다. 지난해 매일 만나거나 책으로 접한 인물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책 ‘책들의 숲이여 음향이여’를 지난달 내놨다.

“어려운 출판 현실에 대해 호소하고 싶었어요. 고리타분한 걸 유지하자는 게 아니라 반듯한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이론과 사상, 즉 본질을 지키자는 겁니다. 책을 멀리하고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젖어서는 지력과 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경남 밀양이 고향인 그는 어릴 적 밤에 마을에 울려 퍼지던 ‘책 읽는 소리’를 회상하며 “책 읽는 것은 설렘과 감동이고 젊은이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통로”라고 주장했다. 또 가장 책을 많이 출판하고 치열하게 읽던 1980년대가 그립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경기 파주출판도시 내 일부 공간을 활용해 열린 도서관을 표방한 ‘지혜의 숲’을 만들었다. 한승옥 숭실대 명예교수, 임현진 서울대 교수 등 각계 석학 및 출판사, 고전번역연구원 등으로부터 기증받은 책 20만여권을 3.1㎞ 길이 서가에 비치했다. 대출은 안 되지만 기증자 특강, 토론회, 클래식 공연, 식사 등이 함께 이뤄지는 문화공간을 염두에 둔 것이다. 평일에도 적지 않은 가족 단위 관람객과 단체 방문객들이 눈에 띄었다. 입장료는 없고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운영비 등으로 7억원을 지원받았다. 김 대표가 각국 도서문화를 탐방하다 본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의 한 성당을 모티브로 했다.

“성당 전체를 서가로 개조했는데 매우 아름답고 고풍스러워서 한국에도 이런 걸 만들고 싶었습니다. 책이 생활 속에 녹아들어 간 자연스러운 공간에서 숨 쉬다 보면 뭔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일각에서는 가장 높은 서가가 6m에 이르는 데도 이 책을 꺼내 보거나 검색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점에 대해 “보여주기식으로 ‘책 무덤’을 만든 게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데이터베이스(DB)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버려지는 책이나 원로학자들의 고서도 계속 받고, 단순한 도서관을 넘어 ‘책이 죽지 않고 살아 삶과 어우러진 전당’을 만들자는 것인 만큼 그런 지적은 타당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김 대표는 1994년 영국 웨일스 지방의 헌책마을 ‘헤이온와이’를 보고 영감을 받아 파주 복합문화공간 ‘헤이리’ 건설을 주도했다. 지혜의 숲도 헤이리 못지않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중앙대 신문학과 64학번인 그는 동아일보 기자로 7년 동안 일했다. “사회의 품격은 언론이 만듭니다. 요새 국내 언론은 너무 공격적, 자극적이고 갈팡질팡하는 것 같아 큰일이에요.” 한길사가 38년 동안 낸 책은 단권 기준 약 3000권. 이 중 대부분이 심도 있는 인문학 서적이지만 로마인이야기, 태백산맥 등 널리 읽힌 스테디셀러도 적지 않다. 그는 “올 하반기 화제가 될 소설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파주=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