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죽음의 방식
사극 같은 데서 사약을 받은 유배자는 궁궐을 향해 공손히 절을 한 뒤에야 결연히 들이켠다. 약사발을 걷어차도 시원찮을 심정일 텐데, 왜 그럴까. 두 가지로 추론된다. 무엇보다 남은 피붙이들의 안위다. 최후의 순간에도 절대권력자를 향해 예를 갖췄다는 보고가 올라가지 않을 리 없다. 죄목엮기에 따라 3족 혹은 9족까지 멸할 대역죄가 당사자로 끝날 수 있다. 다른 추론은 사약 처분에 대한 감사다. 고통 적고 단정하게 생을 마감하게 해준 것에 대한 감읍이랄까. 옛 책에 “능지처참해 마땅하되, 특별한 자비로 자결을 윤허하노라”라는 황제를 보면 그럴 만도 하다.

끔찍한 얘기들이지만 사형의 종류도 다양했다. 교수, 참수에 사지를 황소 네 마리에 매단다는 능지처참도 있었다. 가문의 영광에 죽고살았던 시대, 부관참시형은 후손에 대한 고문이었다. 부디 단숨에 날려달라고 유족들은 칼춤을 추는 망나니에게 몇 푼 엽전도 몰래 쥐여줬다고도 한다. 형집행자 망나니 또한 ‘공직’이었다면 형장에서조차도 고통을 없애달라는 ‘민원’은 있었다. 중세 유럽엔 숱한 화형이, 일본소설엔 목만 나오게 묻은 채 대나무톱을 들이대는 처형도 나온다. 인간의 잔혹성엔 끝이 없었다. 천사의 시작이요, 짐승의 끝이 인간이라고도 했으니….

사형이 아니더라도 죽음의 종류는 다양하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차가운 시골역이 마지막 길이었다. “이제 남은 건 저무는 한역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 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는 설도 있다. 노량바다 충무공의 전사는 그 자체로 역사였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의 무명용사들은 그들의 피가 자유수호와 번영의 밑거름이 될 줄 알았을까. 순국까지는 아니어도 옷깃을 여미게 하는 의사자들도 잇따른다. 성스러운 순교도 많았고, 게송 몇 줄 남긴 고승의 생사초월 열반도 있다. 천 가지 죽음이면 천 가지 사연이 있을 것이다.

한 노인의 비참한 최후가 관심사다. 수천억원 재산가의 몰골이 아니었다. 구원 교주의 이미지도 없다. 들짐승의 구슬픈 울음소리에 스산한 바람만 스쳤을 외딴 매실밭의 수풀더미였다. 양주, 와인은 안 보이고 소주병만 백골 옆에서 처량했다. 유병언의 마지막 길은 너무나 황폐해 보였다. 객사(客死)만으로도 흉이라는데 이런 객사가 없다. 천리 도주 끝에서 병약한 노인의 반성과 회한은 무엇이었을까.

웰빙을 넘어 웰다잉(well-dying) 시대라 한 지도 오래다. 가족에 둘러싸여 평온하게 눈 감기는 아무나 누릴 복이 아닌 것 같다. 평생 성실에 대한 최후의 보상일까.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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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복음침례회 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문

본지 지난 6월 5일 이후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보도와 관련하여 유 전 회장이 정치적 망명이나 밀항을 시도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기독교복음침례회에서는 ‘엄마’는 결혼한 여성을 편하게 부르는 호칭이며, 신도들이 유 전 회장의 도피를 조직적으로 비호한 사실이 없고, 해당 교단에는 신도들의‘집단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혀왔습니다.

한편 유 전 회장 유족 측은 신 모 씨가 유 전 회장의 개인비서로 재직하거나 한국제약 김혜경 대표가 유 전 회장의 재산을 관리해 온 사실이 없고, 유 전 회장이 정관계의 비호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