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여론조사, 李가 '박빙 우위'
시장 앞에 걸린 그의 선거용 현수막은 새누리당을 상징하는 빨간색 대신 검은색으로 채워져 있었다. 선거 캠프는 보좌진 등 8명의 조촐한 모습이었다. 시장에 들어서자 그를 알아본 시민들이 “같이 사진 찍자, 악수 한 번 하자”며 몰려들었다.
선거 운동 초반 견고한 호남 지역주의 벽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이 후보가 순천·곡성에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순천·곡성은 지지층을 쉽게 바꾸지 않는 50~60대 유권자가 43.9%(2014년 4월 기준)로 인구 고령화 추세가 뚜렷한 곳 중 하나다. 특히 이곳은 경쟁자인 서갑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지난 17·18대 때 당선됐던 전통적인 야권 텃밭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지 유권자들은 지난 6년 동안 총 네 번의 재·보궐선거를 거치며 당보다는 인물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옥수수를 사들고 가던 주부 임모씨(55)는 “이제는 당을 떠나서 인물을 보고 찍을 때가 됐다”며 “여태껏 야당만 뽑다가 경기가 다 죽었어”라고 했다. 아랫장에서 만난 자영업자 박상철 씨(63)도 “야당 텃밭인 순천에서 이 후보가 되고 영남에서도 야당 후보가 되고 그래야 나라가 화합하지”라고 말했다. 반면 옆에 있던 조계남 씨(55)는 “인물로 보더라도 통합진보당 때문에 죽어 있는 순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일꾼은 그래도 서갑원뿐”이라고 반박했다.
‘박(朴)의 남자(박근혜 대통령)’ 대 ‘노(盧)의 남자(노무현 전 대통령)’ 간 대결로 비쳤던 선거 구도는 초반 서 후보가 앞서가다 일부 조사에서 이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했다. 여수MBC·순천KBS와 미디어리서치가 20~21일 순천·곡성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신뢰 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이 후보는 38.4%, 서 후보는 33.7%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선거 운동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 후보가 터뜨린 ‘예산 폭탄’ 발언도 추격의 발판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이날도 이 후보는 정권 실세라는 장점을 내세워 순천대 의대 유치, 순천만정원 국가정원화, 광양만 개발 등을 위해 많은 예산을 끌어오겠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의 예상 밖 선전에 새정치연합은 지도부를 총동원해 릴레이 지원 유세에 나섰다. 이날 김한길 대표와 정세균 전 대표가 방문해 지지를 호소했다. 김 대표는 “이번 선거를 통해 호남을 괄시하는 박근혜 정부의 오만, 독선, 고집, 불통을 혼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서 후보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단 한 명도 살리지 못한 무능한 박근혜 정부를 심판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뽑아 달라”고 했다.
또 “이 후보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여왕의 남자임에 틀림없지만 나는 국민을 왕으로 모시고 국민을 대통령으로 모셨던 노무현의 남자”라고 강조했다.
순천=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