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리포트] "오를만큼 올랐다"…주가보다 더 뛴 원자재, 슈퍼사이클 끝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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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美 경기회복 기대…中 수요 시들…연내 7% 떨어질수도
원유, 지정학적 위기 완화…셰일오일 개발 붐…가격 변동폭 줄어
원유, 지정학적 위기 완화…셰일오일 개발 붐…가격 변동폭 줄어
작년 9월 ‘닥터 둠(Dr. Doom)’으로 불리는 월가의 대표적인 비관론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원자재 강세장(슈퍼사이클·super cycle)은 끝났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만 보면 루비니 교수의 예언은 빗나갔다. 올 들어 중동의 정정 불안에 유가가 올랐고 가뭄과 한파, 중국의 수요 증가로 농산물 가격도 급등했다. 여기에 일부 투기자본까지 유입되면서 원자재 가격 상승률은 전 세계 평균 주가상승률을 훌쩍 넘어섰다.
22개 주요 원자재 가격 추이를 보여주는 블룸버그 원자재지수는 상반기 동안 7.1% 올랐다. 같은 기간 전 세계 증시 흐름을 반영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세계 주가지수 상승률(4.9%)을 웃도는 수치다.
상황이 이렇지만 월가의 상품 전문가들은 또다시 “원자재 슈퍼사이클을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 이후 금리 인상 가능성, 중국의 수요 위축 등 어떤 변수 하나도 원자재 가격 상승에 긍정적이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국제문제 분석기관 옥스퍼드 애널리티카는 앞으로 원자재 시장에 대해 “하향 안정화가 뉴노멀(new normal)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물어 가는 金시대
금 생산업체는 금 가격이 내릴 것 같으면 일정 기간 뒤에 팔 금 가격을 미리 계약 상대방과 결정하는 ‘매도 헤지’를 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 최대 금 생산업체 폴리우스골드인터내셔널은 이달 초 매도 헤지 규모를 6년 만에 최대로 늘렸다. 더 이상 금 가격이 오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FT는 향후 금 수요를 고려할 때 금 생산업체들의 매도 헤지 규모가 늘 수 있다고 봤다.
여기에는 수요 위축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가격은 연초 이후 11% 올랐다. 경기회복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런 심리가 누그러질 것이란 게 상품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미국의 경기회복 속도가 빨라지면 금리 인상이 예상보다 일찍 이뤄질 수 있다. 금리 인상으로 시중에 풀려 있는 돈이 줄면 금에 대한 투자수요는 자연스럽게 위축된다.
한 가지 변수가 더 있다. 전 세계 금 수요의 30%가량을 차지하는 중국이다. 중국 감사원은 최근 152억달러 규모의 불법 금 담보 대출을 적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금 담보 대출은 중국의 금 수요를 견인한 중요한 요소”라며 “정밀 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수요 위축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시에테제네랄 역시 2010년 이후 상반기 최고 상승률을 기록한 금 가격이 연말까지 7%가량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셰일 혁명’에 발목 잡힌 유가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은 올 들어 10.6% 올랐다. 브렌트유 가격도 마찬가지로 4.5% 올랐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갈등, 이라크 내전 등 계속된 정정 불안이 유가 상승을 부추겼다.
하지만 지정학적 불안으로 인한 가격 상승은 더 이상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M&A인베스트먼트는 “우크라이나와 중동 지역의 국제적인 불확실성이 앞으로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유가 상승을 가로막을 수 있는 더 큰 변수가 있다. 미국의 ‘셰일 혁명’이다. FT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이라크 내전 등으로 국제 정세가 수개월째 불안하지만 셰일 오일 개발이 국제유가가 요동치는 걸 막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석유 생산량 증가가 국제유가 변동폭을 축소하고 있다는 얘기다.
오랜 세월 모래와 진흙이 단단하게 굳은 퇴적암(셰일)층에 담겨 있는 원유를 의미하는 셰일 오일이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떠오르면서 미국 내에선 셰일 오일 개발이 활발하다. 세계 셰일 오일 매장량은 약 2조5700억배럴로 추정된다. 미국이 이 중 15%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미국의 셰일 오일이 없었다면 유가가 10~12%가량 더 올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미국은 지난달 에너지 안보를 위해 40년간 금지했던 원유 수출 금지를 사실상 해제했다. 산유랑이 증가하면서 초경질유인 콘덴세이트 수출과 수입 원유의 재수출을 허용한 것이다. WSJ는 “미국의 원유 수출 정책 변화가 유가 움직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잘나갔지만 기대 버려야”
곡물 투자는 1분기까지만 해도 좋은 성과를 거뒀다. 작년 한 해 동안 26% 하락한 주요 곡물 가격은 고공행진을 했다. 한파와 가뭄 등 기상 여건 악화에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치면서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거래되는 옥수수, 소맥, 대두 가격은 작년 말에 비해 1분기까지 약 20% 올랐다.
2분기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날씨가 좋아지고 주요 곡물의 재배 여건과 재고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라서다. 미국 농무부는 올해와 내년 주요 곡물의 재고량이 10% 안팎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밀의 경우 재고량이 3년 만에 최고치로 올라설 것으로 추정됐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곡물지수에 따르면 2분기 들어 주요 곡물 가격은 10% 이상 떨어졌다.
폴 크리스토퍼 웰스파고 선임 투자전략가는 “지금까지 곡물 가격 상승이 지나쳤다고 보는 투자자들이 많다”며 “향후 곡물 가격 랠리를 이끌 수 있는 동인이 없다”고 분석했다.
김은정/강영연 기자 kej@hankyung.com
22개 주요 원자재 가격 추이를 보여주는 블룸버그 원자재지수는 상반기 동안 7.1% 올랐다. 같은 기간 전 세계 증시 흐름을 반영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세계 주가지수 상승률(4.9%)을 웃도는 수치다.
상황이 이렇지만 월가의 상품 전문가들은 또다시 “원자재 슈퍼사이클을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 이후 금리 인상 가능성, 중국의 수요 위축 등 어떤 변수 하나도 원자재 가격 상승에 긍정적이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국제문제 분석기관 옥스퍼드 애널리티카는 앞으로 원자재 시장에 대해 “하향 안정화가 뉴노멀(new normal)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물어 가는 金시대
금 생산업체는 금 가격이 내릴 것 같으면 일정 기간 뒤에 팔 금 가격을 미리 계약 상대방과 결정하는 ‘매도 헤지’를 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 최대 금 생산업체 폴리우스골드인터내셔널은 이달 초 매도 헤지 규모를 6년 만에 최대로 늘렸다. 더 이상 금 가격이 오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FT는 향후 금 수요를 고려할 때 금 생산업체들의 매도 헤지 규모가 늘 수 있다고 봤다.
여기에는 수요 위축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가격은 연초 이후 11% 올랐다. 경기회복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런 심리가 누그러질 것이란 게 상품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미국의 경기회복 속도가 빨라지면 금리 인상이 예상보다 일찍 이뤄질 수 있다. 금리 인상으로 시중에 풀려 있는 돈이 줄면 금에 대한 투자수요는 자연스럽게 위축된다.
한 가지 변수가 더 있다. 전 세계 금 수요의 30%가량을 차지하는 중국이다. 중국 감사원은 최근 152억달러 규모의 불법 금 담보 대출을 적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금 담보 대출은 중국의 금 수요를 견인한 중요한 요소”라며 “정밀 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수요 위축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시에테제네랄 역시 2010년 이후 상반기 최고 상승률을 기록한 금 가격이 연말까지 7%가량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셰일 혁명’에 발목 잡힌 유가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은 올 들어 10.6% 올랐다. 브렌트유 가격도 마찬가지로 4.5% 올랐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갈등, 이라크 내전 등 계속된 정정 불안이 유가 상승을 부추겼다.
하지만 지정학적 불안으로 인한 가격 상승은 더 이상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M&A인베스트먼트는 “우크라이나와 중동 지역의 국제적인 불확실성이 앞으로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유가 상승을 가로막을 수 있는 더 큰 변수가 있다. 미국의 ‘셰일 혁명’이다. FT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이라크 내전 등으로 국제 정세가 수개월째 불안하지만 셰일 오일 개발이 국제유가가 요동치는 걸 막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석유 생산량 증가가 국제유가 변동폭을 축소하고 있다는 얘기다.
오랜 세월 모래와 진흙이 단단하게 굳은 퇴적암(셰일)층에 담겨 있는 원유를 의미하는 셰일 오일이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떠오르면서 미국 내에선 셰일 오일 개발이 활발하다. 세계 셰일 오일 매장량은 약 2조5700억배럴로 추정된다. 미국이 이 중 15%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미국의 셰일 오일이 없었다면 유가가 10~12%가량 더 올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미국은 지난달 에너지 안보를 위해 40년간 금지했던 원유 수출 금지를 사실상 해제했다. 산유랑이 증가하면서 초경질유인 콘덴세이트 수출과 수입 원유의 재수출을 허용한 것이다. WSJ는 “미국의 원유 수출 정책 변화가 유가 움직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잘나갔지만 기대 버려야”
곡물 투자는 1분기까지만 해도 좋은 성과를 거뒀다. 작년 한 해 동안 26% 하락한 주요 곡물 가격은 고공행진을 했다. 한파와 가뭄 등 기상 여건 악화에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치면서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거래되는 옥수수, 소맥, 대두 가격은 작년 말에 비해 1분기까지 약 20% 올랐다.
2분기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날씨가 좋아지고 주요 곡물의 재배 여건과 재고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라서다. 미국 농무부는 올해와 내년 주요 곡물의 재고량이 10% 안팎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밀의 경우 재고량이 3년 만에 최고치로 올라설 것으로 추정됐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곡물지수에 따르면 2분기 들어 주요 곡물 가격은 10% 이상 떨어졌다.
폴 크리스토퍼 웰스파고 선임 투자전략가는 “지금까지 곡물 가격 상승이 지나쳤다고 보는 투자자들이 많다”며 “향후 곡물 가격 랠리를 이끌 수 있는 동인이 없다”고 분석했다.
김은정/강영연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