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상 국립극장장이 28일 “국립무용단의 ‘회오리’가 개런티를 받고 프랑스 칸 댄스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다”며 유럽 출장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안호상 국립극장장이 28일 “국립무용단의 ‘회오리’가 개런티를 받고 프랑스 칸 댄스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다”며 유럽 출장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안호상 국립극장장(55·사진)은 지난 10~18일 유럽 출장길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콧대 높은 유럽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앞다퉈 만나자고 연락해왔기 때문. 그는 이번 프랑스·영국 방문길에 프랑스 최고의 무용 중심 극장인 샤이오국립극장에서 디디에 데샹 극장장과 조세 몽탈보 예술감독을 각각 만났다. 최고(最古)의 역사를 자랑하는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브리지트 르페브르 예술감독, 유서 깊은 영국 국립극장의 협력 연출가인 톰 모리스 등도 만나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28일 안 극장장을 만나 이번 출장의 성과와 다음달 30일 막이 오르는 ‘2014~2015 레퍼토리 시즌’에 대해 들었다. 그는 출장의 최대 성과로 국립극장에 소속된 국립무용단이 처음으로 개런티를 받고 해외에서 공연하게 된 것을 꼽았다.

“국립무용단의 한국무용 작품 ‘회오리’가 내년 11월20일 프랑스의 칸 댄스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초청돼 뤼미에르 극장에서 공연됩니다. 이어 ‘묵향’을 들고 프랑스 4개 도시에 투어 공연을 합니다. 공연 주최 측에서 항공료를 제외한 모든 비용을 부담하기로 한 것은 물론 회당 3000유로(약 4139만원)의 개런티까지 받습니다. 무용단 52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에요.”

지난 4월 국내 초연된 ‘회오리’는 핀란드 출신의 테로 사리넨이 안무해 국립무용단의 몸짓으로 무대에 올린 작품.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임기를 마치고 다음달 칸 댄스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 부임하는 르페브르 감독이 국립무용단 작품에 대한 호평을 듣고 영상으로 작품을 확인한 뒤 전격적으로 초청했다.

프랑스 지역 국립극장의 예술감독 2명은 국립창극단과 협업 건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창극의 기반이 되는 판소리는 높고 낮은 음을 창자 한 사람이 표현합니다. 반면 성악은 남자 성부가 테너, 바리톤, 베이스 등 3개로 나뉘어져 있죠. 창극 배우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이야기예요. 예술가들은 새로운 시도에 흥분합니다. 창극을 매력적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이유죠.”

입소문 덕분이었다. “세계 예술계의 정상급 커뮤니티는 좁습니다. 몇 사람에게만 좋은 소문이 나면 그게 바로 퍼져요. ‘회오리’에 대한 호평이 국제적으로 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립극장이 세계적인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 안드레이 서반 등과 함께 작업한 이력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그는 한국 문화콘텐츠의 달라진 위상을 체감했다고 했다. “이전까지 한국은 북미와 유럽의 예술 콘텐츠를 가져다 소비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서양에서 아시아의 콘텐츠를 찾고 있습니다. 국내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났고, 한류란 막강한 콘텐츠가 트렌드가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립극장이 서툴더라도 한국 고유의 것을 제대로 만드는 극장으로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봐요.”

안 극장장은 이날 ‘2014~2015 레퍼토리 시즌’(1년 단위의 공연 스케줄을 한꺼번에 발표하는 것)을 발표했다.

이번 시즌에는 기존에 호평받았던 국립창극단의 ‘메디아’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국립무용단의 ‘회오리’, 국립극단의 ‘단테의 신곡’이 재공연된다. 신작으론 해외연출가 서반이 만드는 창극 ‘춘향가’, 재일동포 연출가 정의신이 창극단과 올리는 ‘코카서스의 백묵원’ 등이 주목된다. 그는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레퍼토리 시즌을 꾸리며 지속적으로 ‘경계 허물기’ 작업을 했다. 연극·오페라 연출가가 만든 창극을 선보였고 국내 예술단체의 협업을 유도했다. 이런 파격을 두고 일부 예술계 인사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셰익스피어를 각국에서 자기의 방식으로 공연하더라도 셰익스피어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창극을 누가 연출하더라도 창극의 본질이 훼손되지는 않는다고 믿습니다. 예술가에게 새로운 변화를 알게 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고 의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