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체 상당수는 화장품 제조업의 경쟁력 저하를 유발할 뿐 아니라 값싼 불량 외국산 제품과 원료가 대량 유통될 수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29일 화장품 업계에 따르면 화장품협회(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대표)는 지난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화장품 포장의 기재·표시사항과 관련, 제조업자를 빼고 제조판매업자만 표기하도록 건의했다. 식약처는 이같은 내용의 규제 개혁을 받아들여 현재 화장품정책과에서 법 개정 여부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화장품협회에서 건의한 내용의 골자는 화장품산업 발전을 위해 현재 제조업자와 제조판매업자로 구분돼 있는 화장품 포장 표기를 제조판매업자로 통일하고 제조판매업자가 원료의 품질관리에 대한 책임을 모두 지게 하자는 것이다. 제조업자는 실제 화장품을 만드는 업체를 말한다. 예컨대 화장품을 생산하는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업체, 또는 제조자 개발생산(ODM) 업체 등이다. 현재 식약처에 등록된 국내 화장품 제조업체는 968개에 달한다.
반면 제조판매업자는 화장품을 수입하거나 제조업체로부터 생산된 제품을 받아 유통·판매만 하는 업체를 말한다. 화장품의 경우 제조업자는 대체로 중소 OEM·ODM 업체가 많고, 제조판매업자는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대기업이 주를 이룬다.
제조판매업자들로 구성된 화장품협회는 제조업자 표기를 계속 유지할 경우 유통판매업자의 입지가 위축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화장품협회 관계자는 “일부 OEM업체는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을 정도로 기술력과 경쟁력이 높아졌다”며 “화장품 표기에 특정 제조업자의 표기를 계속 유지할 경우 판매업자 입장에선 오히려 부담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화장품 제조업체에 위탁생산을 주문한 유통판매업체들이 특정 제조업체의 브랜드에 밀려 다른 저가의 중소 OEM제조업체에 위탁생산을 의뢰하기가 힘들어졌다는 얘기다.
그러나 일부 화장품 제조업체의 입장은 다르다. 제조업자 표기를 삭제할 경우 실제 상품 제조업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 ‘소비자의 알 권리’가 후퇴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중소 OEM업체가 불량하고 값싼 원료를 대량유통할 수 있다며 법 개정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화장품 생산업체의 한 관계자는 “제조원들이 연구·개발을 통해 원료 품질을 높이려고 노력해왔지만 앞으로 제조업자 표기가 없어지면 유통판매업체들은 원가가 낮은 저품질 원료와 제품 만을 주문하게 될 것”이라며 “의약품·건강기능식품 등에서 하는 것처럼 화장품에도 제조업체가 반드시 함께 병행 표기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화장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원래 제조원과 판매원으로 구분돼있었지만, 화장품협회 등의 강력한 건의로 2012년 화장품법이 개정돼 제조업자와 제조판매업자로 바뀌었다”며 “이번에 다시 법을 바꿔 제조업 표기를 완전히 삭제하겠다는 것은 중소 제조업체가 자체적인 경쟁력을 키우지 못하도록 규제를 가하는 것과 같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이채원 식약처 화장품정책과 사무관은 “화장품협회의 건의가 있어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제조원에 대한 ‘소비자의 알 권리’가 훼손될 수 있고, 상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을 위해서는 제조업자 표기를 유지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도 많아 실제로 법을 개정할지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이달 중 내부 논의를 마무리하고 법 개정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더불어 법 개정 여부를 떠나 화장품 소비자를 대상으로 제조업자와 제조판매업자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설명회 등을 개최할 계획이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