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로 출근하는 돼지고기 수입업자·큐레이터
금융회사로 출근하는 돼지고기 수입업자·큐레이터
김장주 현대캐피탈 기업금융팀 대리는 호주·미국·캐나다 등지에서 축산물을 수입해 유통하는 국내 최대 축산물도매업체에서 7년6개월간 근무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3조원에 달하는 국내 축산물 수입 도매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현대캐피탈이 지난 2월 영입했다.

금융상품이 고도화·복잡화하는 것과 궤를 같이해 여러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이 금융업계로 속속 진입하고 있다. 김 대리 같은 돼지고기 수입업자를 비롯해 큐레이터, 방송PD, 영화제작자, 배구선수, 수학자 등 경력도 다양하다.

◆현대캐피탈에 입사한 축산물 도매업자

이색 경력자들의 대거 등장은 저금리 기조로 수익성이 악화된 금융회사들의 새로운 먹거리 찾기와 관련이 있다. 현대캐피탈은 김 대리 영입을 발판 삼아 올 하반기에 축산물 담보대출 상품을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김 대리는 수입업체 담보물(수입 축산물)의 가치평가를 통해 축산물 담보대출 상품을 개발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축산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김 대리는 국가별로 천차만별인 수입 소고기 라벨을 눈으로 훑는 것만으로도 단번에 소고기의 질을 분류할 수 있는 베테랑이다. 그는 “거래회사들의 시장가치를 추산한 뒤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현금 조달이 중요한 사업 영역인 만큼 새 상품은 축산물 수입시장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대리 외에도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는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 경찰, 호텔리어, 미술 큐레이터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영입했다. 경력 직원 중 비금융권 출신 비중이 50%에 달한다. 강정명 현대캐피탈 대리는 미생물학을 전공한 식품회사 연구원 출신이다. 강 대리는 현대카드가 국내 생수업체와 공동 개발한 ‘잇워터’의 품질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큐레이터는 현대카드가 운영 중인 ‘여행도서관’과 ‘디자인도서관’에서, 사이버수사대 출신 경찰은 보안팀에서 근무 중이다.

기업은행은 방송국 PD, 영화제작자 등을 영입해 문화콘텐츠 분야 수익원 발굴을 독려하고 있다. 제조업에 치우쳐 있는 대출처를 문화콘텐츠 등의 비제조 부문으로 다양화한다는 전략이다. 영화 ‘베를린’ ‘연가시’ ‘타워’,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최고다 이순신’,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레미제라블’, 가왕(歌王) 조용필의 전국 투어 콘서트 ‘헬로’ 등 최근 1~2년 새 대중문화계의 관심을 끈 작품에 자금을 지원했다.

기업은행은 문화계 인재들을 영입해 2012년 문화콘텐츠사업팀을 출범시켰다. 팀의 문동열 차장(40)은 SBS콘텐츠허브에서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한 베테랑 PD다. 쇼이스트 출신인 윤성욱 과장(37)은 ‘올드보이’ ‘주먹이 운다’ 등 히트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맡았던 주역이다. 배구 선수였던 기용일 삼성화재 GA사업부 지점장은 어깨 부상 후 보험맨으로 변신했다. 보험업계에서 가장 고된 분야로 꼽히는 보상 부문에서 7년간 일한 뒤 지점장으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모바일금융 영업 강화

금융공학을 활용한 상품이 많아지면서 이공계 경력자도 눈에 띈다. 이론물리학 박사인 권황현 산업은행 차장이 대표적이다. 자본시장본부에서 금융 리스크 측정과 시스템 검증을 맡고 있는 그는 KAIST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이론물리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과학도다.

권 차장은 “물리학은 자연현상에 대한 연구를 기본으로 하지만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과 관점이 금융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금융업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모바일금융이 새로운 영역으로 부상한 덕분에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의 이동도 두드러지고 있다. 신한카드 스마트채널팀은 다음커뮤니케이션 출신인 김재욱 차장을 영입했다. 2010년 신한카드로 옮긴 그는 스마트신한, 신한 스마트매니저 등 신한카드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개발을 이끌고 있다. KB국민카드도 SK텔레콤 등에서 10년 넘게 고객관리시스템 개발을 담당해온 김지희 차장을 2012년 영입해 전자지갑 업무를 맡겼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융합의 시대에 걸맞은 다양한 인재 활용이 미래 기업 가치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훈/김일규/박종서 기자 lizi@hankyung.com